‘다문화 공생’이라는 말은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용된 것으로 그전까진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사회를 말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때마침 2013년에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었고 다문화 공생 사회를 구성하는 이문화에 대한 일본 국민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일본 법무성(法務省)의 ‘재류(在留) 외국인 통계’에 의하면 1990년대부터 중국, 브라질, 필리핀으로부터 인구 유입이 증가하였고 리먼 쇼크(미국 발 세계금융위기),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감소하였으나, 2013년부터는 다시 증가 추세가 이어져 2014년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약 260만 명에 달한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것을 환영하든 환영하지 않든 세계로부터 고립된 일본을 지향하지 않는 이상, 외국인과의 공생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다문화 공생 사회를 받아들이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격하게 말하자면 ‘다문화 공생 사회기본법’ 등의 법률적인 측면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법률적인 정비가 완벽히 이루어진다고 해도 진정한 측면에서의 다문화사회는 어려울 것이다. 이 법률들이 유효하게 운용되려면 현지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의식개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균일하고 획일적인 사회를 구성해 온 일본이기 때문에 다문화 공생 사회로의 전환은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엄청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하나의 공통된 가치관으로 살아 온 우리가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바꾸고 우리와 다른 시점에서 생각하는 방법들에 대해 논의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의식을 바꿔야 할 것인가? 외국인이 증가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의식도 변화해 가겠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새로운 사회를 받아들이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문화를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러려면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의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까운 주제들로 정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또한 다문화 공생 사회를 지지하는 소통능력을 고취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이제는 올바른 이문화 커뮤니케이션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다가올 다문화 공생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되었다.
외국인과의 접촉이 없는 일반인의 주변에도 이문화적인 요소가 깔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실제로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는 이문화적인 요소가 있다. 이러한 이문화와의 교류도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이문화와 접촉하며 ‘인생은 언제나 이문화와의 소통 속에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과의 만남이 적은 대다수의 사람은 이문화는 자신들과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은 외국인과의 교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예전 TV광고에서 ‘お茶の間留?(거실에서의 유학)’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영어회화 학원이 있었다. 이 광고 문구 중 하나가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 학원의 광고에는 임팩트 있는 것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우주인이 등장하는 광고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주인이 간사이(?西) 지방 사투리로 “異文化コミュニケ?ションちゅうのはやっぱりええと思うねんな(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은 역시 좋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 광고에서는 영어회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매우 멋진 일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수업을 살펴보아도 ‘이문화’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과목들은 대체적으로 영어과목인 경우가 많다. 출판사에서 받은 교과서 리스트를 살펴보면 ‘이문화간의 이해와 오해’, ‘이문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잘못된 이문화 커뮤니케이션’, ‘이문화 Cross road’, ‘이문화 이해를 위한 실천학습’ 등 이문화라는 문자가 나열된 것을 볼 수 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다시 말해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문화라는 것은 외국문화에만 한정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이문화에 관한 질문으로 다음 항목 중 당신이 이문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단어들인지 해당하는 인물을 체크해 보자.
□ 미국인 □ 인도인 □ 아빠 □ 엄마 □ 친구
□ 상사 □ 재류외국인 □ 고향사람 □ 형제/자매
□ 학교친구 □ 동료 □ 아이 □ 배우자(남편/아내)
전부 13개 종류의 사람들로 예를 들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문화는 몇 개 정도인가? 표시한 숫자에 따라 이문화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체크한 숫자가 3개인 당신은 ‘이문화=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미국인’, ‘인도인’, ‘재류외국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재류외국인’에게는 일본 영주권이 있다고 생각하여 2개라고 대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문화는 외국’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4~12개라고 체크한 사람은 이문화를 외국인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같은 일본인이라도 이문화라고 해석하는 사람이다. 상사의 불합리한 태도에 질려버렸다든지 아이의 생각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든지 배우자와 크게 싸우고 나서 대화하지 않는 등의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사람들을 이문화의 범주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문화에 대한 해석을 상당히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외국인에게 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13개이다. 즉 전부인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이문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문화란 좁은 의미로 생각하면 외국인이라고 한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이문화는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인 영어를 공부하고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문적인 관점에서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을 정의하면 이문화를 외국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이문화란 문자 그대로 ‘다른 문화’를 의미하고 국경선에 의한 구별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민족이 다르고 출신지가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가정환경이 다르다면 다른 문화가 되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같은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아무리 사이 좋은 친구라도 자라온 가정환경이 다르고 같은 환경에서 살아온 부모 형제라 하더라도 의견 충돌이 없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완전히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쌍둥이 형제조차도 아침부터 밤까지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경험을 하면서 다른 생각이나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 이외의 인간은 모두 이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서로가 같이 느끼고 같이 생각한다고 여기므로 자신과는 다른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화가 나는 것이다. 서로가 외국인처럼 다른 생각을 한다. 즉 이문화라고 생각하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관이 펼쳐지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것은 외국인과의 교류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커뮤니케이션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다문화 공생 사회에서는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과의 교류를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으로 의식할 필요성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을 되짚어보면서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을 고취시켜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