號 : 一派, 乞士比丘, 雲梯山人, 三角山人 등
부산에서 출생. / 72년 해인사 입산
72년 동화사에서 경산(京山)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 / 76년 범어사 승가대학에서 사교과정을 이수
84년 2교구본사 용주사 교무국장 / 97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를 전공
적조사주지(98~02,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문인화가, 평론가 석도륜 선생님께 사사
‘90 예술대제전’ 초서부문 당선 / ‘시’전문지『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시, 추천완료(현대시)
2007년~2012년 양평 용문사에서 한주(閑主)로 정진.
현재, 경상매일신문과 경기데일리신문(칼럼연재) / 선으로 가는 길(선문화잡지) 연재
포항 일파재에서 정진중.
개인전, 경인 미술관,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등 4회
저서: 『너는 금생에 사람노릇 하지 마라』『달마 산책』『오가밥상』『그대 안에 수미산도 다 놓아버려라』『채근담』『산사의 주련』(공저) 『내 마음의 이야기』『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여행』『그대 마음을 가져오라』『산문의 향기』『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시선일여』『꽃을 드니 미소 짓다』등
머리 글
계절은 변화해서 움추렸던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니 농부는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바쁜 때다. 언제쯤이던가? 시서화(詩書畵)를 지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던 차 2년 전부터 한 컷씩 「경기데일리와 경상매일신문」에 칼럼형식으로 연재를 했다. 선가(禪家)의 분상에서 보면 다 부질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根機)가 각기 다르고 이해하는 점도 각기 다르기에 나는 시·서·화에 골똘하게 되었다. 나는 수행자다. 그간 현존하는 고승대덕들이 법문(法門)을 통해 많은 게송(偈頌)을 읊었지만 스스로의 게송보다는 중국 고승들의 법문을 인용하기가 다반사였다.
일찍이 경남 양산에서 10대 후반에 합천 해인사(海印寺)를 향해 무한정 걷고 또 걸어 출가를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출가란, 집을 떠나고 정든 가족을 버리고 자기마저 버릴 때 진정 출가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강원, 선방 등에서 수행을 익히지만 점차로 스스로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경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야 한다’는 수행의 길이다.
어느 때는 산을 넘고, 어느 때는 물을 건너고 어느 때는 머문다. 다만 진정한 수행은 한 생각을 쉬는 데 있다. 한 생각을 쉬지 못하면 산 넘고 물을 넘는다 해도 도(道)와는 요원하다. 이 한 생각을 쉰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나의 스승 경산스님께서 “너는 금생에 사람노릇 하지 말라” 하신 까닭도 한 생각을 쉬라는 뜻이다. 그 한 생각을 쉬기 위한 노력을 수행자로서 오늘도 계속해나가고 있다. 나의 수행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곤륜(崑崙)에 오르는 그날이 나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보고 느끼고 체험한 과정을 후인들을 위해 정리한 것이 이번에 보인 『꽃을 드니 미소 짓다』(拈花微笑)이다. 이것이 조사관(祖師關)에 부합해서 나의 수행일지가 야부선사 게송(冶父禪師偈頌)에 “마음에서 사람에게 짐 되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럼이 없다.”라 한 그런 수행자로 남는다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호 제현의 일독을 권하며, 또한 많은 질책을 멀리하지 않겠다.
영일만(迎日灣)에서 제운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