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에 웨일스인 아버지와 잉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제임스James란 이름의 사내아이로 태어났다. 영국 해군 장교로 2차대전에 참전한 이후 <타임스>지에 입사하여 엘리자베스2세 즉위식에 맞춰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등정 성공 소식을 전하면서 일약 스타 저널리스트로 발돋움했다. 1962년에 <가디언> 기자 일을 그만 두고 전업 기행작가로 나선다.
1960년대에 펴낸 <베네치아>, <스페인>, <옥스포드> 등의 여행에세이는 20세기 기행문학의 새로운 전형을 일구어낸 역작으로 평가된다. 그 후 10여 년간 대영제국의 흥망사를 다룬 <팍스 브리타니카> 3부작을 발표해 높은 문학적 성취도를 인정받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줄곧 “난 몸을 잘못 타고 난 듯”하다고 느껴온 제임스 모리스는 1964년부터 1972년 사이에 성전환 과정을 거쳐 쟌 모리스라는 46세의 여인으로 거듭난다.
<가디언>, <타임스>, <뉴욕타임스> 등의 신문과 <롤링스톤스> 등의 잡지에 왕성한 기고활동을 펼치며 여러 권의 에세이집을 엮어내었고 수려하고 독특한 쟌 모리스 특유의 로코코 스타일을 확립했다. 고도로 다듬어져 원숙미 넘치는 직관으로 가득하여, 마치 인상파 거장의 작품 세계를 보듯 도시를 감상하게 하는 대표적인 저작으로서 <맨하탄>, <시드니>, <홍콩> 등이 있다. 2001년의 9.11 사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에서는 허물어진 무역센터 사진 아래에 영국인인 그녀가 쓴 맨하탄 에세이를 카피로 쓰기도 했다.
2008년에는 쟌 모리스에게 두 가지의 경사가 있었다. 하나는 <타임스>지가 선정한 ‘2차대전 후 영국을 빛낸 위대한 문인’ 50인 중 열다섯 번째에 오른 것. 다른 하나는 결혼 이후 성전환을 거친 뒤에도 줄곧 웨일스의 시골에서 사이좋은 자매처럼 함께 늙어온 옛 아내 엘리자베스와 거의 60년 만에 여성-여성 커플로 법적으로 재결합civil union했다는 것.
2011년 <인디펜던트> ‘먼데이 인터뷰’(3월 4일자)에 따르면 쟌 모리스가 높이 평가하는 덕목은 품위, 선행, 친절 등이다. 특히 <50년간의 세계여행> 에필로그에서도 밝히고 있듯, 쟌은 현실 세계와 정치의 추악한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친절당’Kindness Party을 만들자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 “친절당은 모든 정책 결정에 있어서 친절의 함량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을 겁니다. 행정부의 전체 시스템이 바로 이 친절이란 평가 기준에 맞춰 운영되는 거죠.” ― 다가올 새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스스럼없이 친절을 꼽고 있다. 테러리즘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쟌 모리스의 친절 제안을 그녀의 글 곳곳에서 발견하는 일은 참으로 색다른 독서의 묘미를 선사한다.
내가 어느 도시에 대한 글을 쓸 때 그 글은 그 도시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적는 것이니까, 어떻게 보자면 내 방식대로 그 도시를 창조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팍스 브리타니카> 3부작의 경우는 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내 자신에 대한 얘기들인 셈이죠. 이런 말 하기 미안하긴 하지만, 사실 저의 지난날들이 꽤나 흥미로운 삶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