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경제학자, 정치가로 알려진 백남운은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수원고등농림학교와 일본 동경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1925~38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원시?고대사회경제사 연구서인 《조선사회경제사》(1933) 및 《조선봉건사회경제사상》(1937)을 발간하였는데, 일제 강점하에서도 큰 연구업적을 남김으로써 한국 경제사학 발전의 선구자 또는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1922년 한용운, 조만식 등과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29년에는 홍명희 등과 함께 조선사정연구회를 조직했다.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38년에는 ‘연구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8.15 직후에 조선학술원을 설립, 원장에 취임하고 민족문화연구소도 설립했다. 1945년 12월에는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정학 교수로 미군정의 임명사령을 받았으며, 조선신민당(남조선신민당의 전신)의 경성특별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을 지내고 1947년에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창설, 부위원장으로 있던 중 월북했다.
월북 후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1948), 과학원 원장(1952), 민주과학협회 위원장(1956),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1961), 최고인민회의 의장(1969)을 거쳐 1974년에는 조국전선 의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