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 시절 전시 소재를 찾던 중, 엄마를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료도 평소와 다르게, 작업방식도 새롭게 해서 나름 만족스러운 엄마의 초상화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몇 달 뒤 엄마는 여행지에서 새 초상화를 그려왔고 액자까지 만들어 걸어 놓았습니다. 내가 그린 초상화는 창고 한구석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엄마에게도 엄마이기 이전에 독립된 자아가, 여자가 존재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왜 엄마가 내 초상화를 싫어했는지에 대한 답을 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두 개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또 몇 년이 흘렀고, 결혼하여 집안 살림을 꾸려 가며 조금씩 엄마의 수고와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친정에 가니 내가 그린 엄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걸 보며 다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왜 내 초상화를 싫어했는지가 아니라, 왜 새로운 초상화를 원했는지를.
엄마를 이해하기엔 난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아니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또 다시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다시금 그리게 된 엄마의 초상화를 말이지요. 새로운 초상화를 엄마가 좋아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 미영 씨는 ‘예측불가’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