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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주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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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일사각오>

주기철

한국 교회가 낳은 대표적인 순교자 주기철 목사는 1897년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서 주현성 장로의 넷째 아들로 출생했다.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오산학교에 입학해 조만식과 이승훈으로부터 신앙, 애국, 민족정신을 배웠다. 1920년 웅천읍교회에 초청된 김익두 목사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고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뒤 장로회신학교에 입학, 1925년 12월 목사안수를 받았다. 신학교 2학년이던 1923년 봄 양산읍교회 조사(助事)를 시작으로 부산 초량교회(1926-1931), 마산 문창교회(1931-1936), 평양 산정현교회(1936-1944)에서 목회했다.
주기철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싸우다가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시무할 당시 네 차례에 걸쳐 검속을 당했다. 그 시작은 1938년 2월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일어난 ‘김일선 기념식수 훼손사건’으로 추정되며, 이후 같은 해 8월 ‘농우회사건’으로 의성 경찰서에 2차 검속되었고, 1939년 10월에는 특별한 혐의 없이 평양 경찰서에 3차 검속되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자 검거 시기인 1940년 9월 4차 검속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병감으로 이송한 며칠 뒤인 1944년 4월 21일 47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했다. 그는 7년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네 번째 투옥되었을 당시 평양노회는 주기철의 목사직을 파면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63년 건국공로훈장(단장)을 추서했으며, 주기철을 파면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는 2006년 4월 그의 목사직을 복권하였다. 2015년 주기철의 고향인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로 174에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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