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두 살 무렵에 아버지 도널드 에드윈 킹이 집을 나간 이후 어머니 넬리 루스 필스버리 킹 슬하에서 형과 함께 자랐다. 위스콘신주, 인디애나주, 코네티컷주를 전전하던 일가는 킹이 열한 살이 되었을 무렵 마침내 메인주 더럼에 정착했다.
메인 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한 킹은 2학년 때부터 대학 신문에 매주 칼럼을 썼고, 학생 위원으로서 학내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반전 운동을 지지하기도 했다. 대학 도서관에서 일하던 중 창작 워크숍에서 만난 태비사 스프루스와 졸업한 이듬해인 1971년 결혼했다. 이후 킹은 세탁소에서 일하다 햄프던 공립 고등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그러는 틈틈이 잡지에 단편소설을 기고했다.
킹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은 1974년에 발표한 데뷔작 『캐리』로, 원래 중도에 포기하고 버린 원고를 아내 태비사가 쓰레기통에서 꺼내 읽은 후에 계속 쓰도록 조언한 결과 완성한 장편소설이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된 킹은 이후 『살렘스 롯』, 『샤이닝』, 『스탠드』 등의 대작을 연이어 출간했고, 특히 1986년에 출간한 『그것』은 모던 호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공포의 제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간의 심층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데 탁월한 작가로 알려졌지만, 공포뿐 아니라 SF, 판타지,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로 대중적 인기를 얻는 동시에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명실공히 ‘이야기의 제왕’으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 도서상 시상식에서 미국 문단에 탁월한 공로를 세운 작가에게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1996년에는 오헨리 상, 2011년에는 LA 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입증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브램 스토커 상, 영국환상문학상, 호러 길드 상, 로커스 상, 세계환상문학상 등 유수의 장르소설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도전한 탐정 미스터리 『미스터 메르세데스』로 영미권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에드거 상을 수상하며 왕성한 활동을 과시했다.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작가로도 잘 알려진 킹은 미국 소설가 중에서 역대 가장 많은 작품이 영상화된 인물로도 손꼽힌다. 『캐리』, 『샤이닝』, 『살렘스 롯』,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본』,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미스트』 등이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매년 출간되는 신작들 역시 업계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스티븐 킹은 아내와 함께 메인주에 거주하며 계속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저는 감성적인 작품을 주로 읽고 감성적인 작품만을 씁니다. 무엇보다 제 안에서 나온 것만을 쓰려고 하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의 감정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를 호러 작가라고 부릅니다. 저는 '호러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거부한 적은 없지만 순순히 인정한 적도 없지요. 단지 호러 장르가 유행했기 때문에 호러 작가라고 불렸을 뿐, 저는 다만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바로 독자들의 감정을 공격하고 놀래키는 일 말입니다.
데이트 약속을 깜박 잊게 만드는 것, 불 위에 올려놓은 저녁밥을 홀랑 태우게 만드는 것, 런던발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뉴욕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워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제 직업입니다. (웃음)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고요. 만약 독자가 제 소설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때 침대 밑에 뭔가 있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면, 대성공입니다.
하지만 저는 독자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것만큼 웃게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 에서처럼 독자들에게 슬픔을 선물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독자들은 이 책에서 깊은 슬픔과 따뜻한 유대감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감성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같은 곳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제 머릿속, 제 마음속, 제 경험속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