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유광일(유빛날).
전북 김제 마리들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유교경전학을 전공(‘한민족 통합과 유교 공동체 의식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취득)했으며 동산 불교 경전 연구원을 수료했다.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겨울풍장(김상옥님, 이상범님 선)이 당선되었다.
첫 시집 <꿈꾸는 철마를 위하여>를 내놓았으며
10대 청소년 성장통을 다룬 장편소설 <달이 뜨는 호반>의 출간을 준비 중이다.
첫 시집을 내며
덜컥 첫 시집을 상재하고 돌이켜보는 하 세월이 마냥 남 부끄럽고 쑥스럽기만하다.
내 생애의 한 어름에서 그래도 남은 정신의 편력이 불타던 영혼의 한자락 흔적처럼 남아 있는 것이 아마도 다행일까 싶다. 1989년 신춘문예 등단 후 두어 십년을 넘은 아주 뒤 늦은 날에 주섬 주섬 내 삶의 편린들을 주워 모아 이렇게 떨겁운 시집 한 권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이기로 했다.
숱한 감성의 떨기들이 꽃을 피웠던 지난 시절 오랫동안 불찰과 부주의로 더러 손실되거나 잃어버려 찾지를 못한 몇몇 작품들에 대하여 내내 안타까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무엇보다 오랜 옛날 어느 지상에 당선작 없는 가작 입선에 오른 ‘겨울 꽃나무.와 또 잡지에 실렸던 ’풀피리‘, ’설.신궁‘ 애지중지 몇 수년간을 그리움의 탑을 쌓으며 끝내 완성했던 ’탑‘ 등 초고 작품을 못내 찾지 못한 것에 가슴이 아릴 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다른 격렬한 시인들과는 달리 시집에 그대로 내기에는 좀 껄끄럽다싶은 시국에 관련한 몇몇 작품을(‘빠리 다녀 온 만화가 로미옹씨 _만우절 우화’, ‘열다섯살 탈북소년 림동곽이 띄우는 공개 편지.) 아예 시편에 올리지 못힌 것에 널리 양찰을 구한다.
실상 언젠부턴가 나는 내 하루 하루를 일기로 써서 남기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뜻을 접어야 했다. 일기는 바로 내 양심의 거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 뜻같지 않는 사회 속에 살면서 늘상 내가 착한 천사나 신이 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내 자의식이 그 일기 쓰는 일을 좀체 허락하지를 않았다. 적어도 그 허위와 가식에 찬 듯한 위선의 의식을 내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터에서였다. 짐짓 내가 시인이기를 거부했던 것도 그래서 한 줄도 쓰기가 버거웠던 일도 일련의 내 양심의 그런 천착에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가 부딪는 역사와 현실 앞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진정 내 양심이 지향하는 눈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진정 우리 뜨거운 피에 대한 사랑의 아픔이 결코 어떤 이념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쓸데없는 공허한 울림이 되어서는 아니 되리라 믿는다. 나는 그래서 오늘을 살고 있는 내 시점에서 참 조국을 향한 거짓없는 일깨움으로 다시 출발의 깃발을 올리고 싶어한다. 항용 가면과 위선에 절은 내 자신의 허상을 짓 깨부수고 혁명하여 불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사는 피닉스처럼 태어나 마지막 남은 여생의 행진을 계속할 것이다. 그래서 목마른 자유를 위한 또한 정의와 양심의 불꽃을 피워 올리며 부단히 우리 내부의 공기를 환기시키려 한다.
이 첫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내가 2010년도 초에 인터넷에 접하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대부분의 작품들이다. 작품 활동을 아주 접고 있었으나 이미 당시 지상에 한번쯤 활자되어 났던 초고들을 꺼내어 선보이면서 분에 넘치는 많은 네티즌 님들의 호응에 이 지면을 빌어서 다시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참에 더욱 분발하여 독자님들께 한층 가까이 닿는 모국어의 가슴을 울리는 우리 겨레시의 가락을 노래로 엮어 드리고 싶다.
조국아, 강산의 돌 속 쪼개고 흐르는
깊은 강물, 조국아
우리는 임진강변에서도 기다리고 있나니,
말없이 총기로 더럽혀진 땅을 빨래질하며
샘물같은 동방의 눈빛을 키우고 있나니…
(굴절된 역사앞에서 민족사의 하늘을 노래하던 신동엽님의 ‘조국’ 중에서)
임진강 바람 부는 솔이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