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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오균

출생:469년

사망:520년

최근작
2014년 6월 <[큰글씨책] 제해기 / 속제해기>

오균

남조 양(梁)나라의 사학가이자 문학가로, 자는 숙상(叔庠)이며 오흥(吳興) 고장[故?: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안지현(安吉縣)] 사람이다. 집안은 빈한했지만 학문을 좋아하고 뛰어난 문재를 지녔기에 심약(沈約)이 그의 문장을 보고 매우 칭찬했다. 양나라 천감(天監) 연간(502~519) 초에 오흥태수 유운(柳?)의 주부(主簿), 천감 6년(507)에 양주자사(揚州刺史) 건안왕(建安王) 소위(蕭偉)의 기실(記室), 천감 9년(510)에 국시랑(國侍郞) 겸 부성국(府城局)을 지냈으며, 천감 12년(513)에 임천정혜왕(臨川靖惠王) 소굉(蕭宏)의 추천으로 양 무제 앞에서 지은 시가 무제의 마음에 들어 대조저작(待詔著作)과 봉조청(奉朝請)에 임명되었다. 오균은 시문에 뛰어나 당시 명성을 떨쳤는데, ≪양서(梁書)≫ 본전에서 “오균의 문체는 맑게 빼어나 예스런 기운이 있었는데, 호사자들이 간혹 그것을 본받아 오균체라고 불렀다”라고 했다. ≪오균집(吳均集)≫ 20권이 있었으나 이미 망실되었고, 명나라 때 그의 시문을 모아 ≪오조청집(吳朝請集)≫ 1권을 간행했다. 또한 ≪제춘추(齊春秋)≫ 30권, ≪묘기(廟記)≫ 10권, ≪십이주기(十二州記)≫ 16권, ≪전당선현전(錢唐先賢傳)≫ 5권, ≪속문석(續文釋)≫ 5권, ≪후한서주(後漢書注)≫ 90권을 지었는데 모두 망실되었고, ≪속제해기≫ 1권만 남아 있다. ≪양서(梁書)≫ 권49와 ≪남사(南史)≫ 권72에 그의 전(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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