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과 언어 교육 분야에서 공부를 해 온 지 서른 해가 조금 넘었다. 서른 해면 무언가 답을 찾았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문의 세계는 망망대해처럼 여겨지고, 공부를 할수록 출구와 먼 쪽으로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알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은데, 간혹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도 ‘이게 진정 맞는 이야기인가’하는 의심이 드니 참 어려운 일이다.
비비언 쿡과 데이비드 싱글턴의 저서 『Key Topics in Second Language Acquisition』을 처음 접하고 읽었을 때, 제2언어 습득에 대해 가져온 나의 복잡한 생각과 의심이 어쩌면 필연적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습득과 나이, 어휘와 문법 학습, 언어 학습자의 학습 목적과 동기, 다양한 언어 교수법 등에 대해 갖고 있던 내 생각이 매우 단편적이고 일반화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2언어 습득에 관한 여러 이론뿐 아니라 최신의 연구들과 다양한 관련 사례까지 망라해 놓았다. 두 명의 필자가 선정한 대표적인 주제 여덟 가지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며 언어 교육의 필수 개념들을 재정의하기도 하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주장들에 대해 폭넓게 소개해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가볍게 다가서지만 이내 깊이 있는 이야기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 책의 매력은 학문적 깊이에만 있지는 않다. 제2언어와 관련된 대중적 인물들(필립 공, 로버트 맥스웰, 가수 프린스, 잉그리드 버그만, 조지프 콘래드 등)의 일화, 제2언어 사용과 관련된 사실(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테네리페 공항 사고 등)에 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동원되어 독자의 감성적 측면까지 파고든다. 이 책을 번역하고 싶었던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었다.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읽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