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업
이 책은 유년시절의 나를 위한 지침서와도 같다. 1987년 밴더빌트 대학교 해군 학군단을 갓 졸업한 나는 직업군인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풋내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를 비롯하여 새로 임관한 모든 해군 장교들은 전술적 수준의 전문지식과 기술 분야에 대해 끊임없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을 받으면서도 늘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해군장교로 7대양을 누비며 화포를 쏘고 타지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등 이 모든 활동을 해야 하는 목적에 대한 교육이었다. 당시 훈련은 행정, 장비 유지 및 보수 그리고 경계 근무 등 일상적인 업무를 넘어서는 주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던 것이다. 함대에 배정된 이후에도 이러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해상 근무로 인해 나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고사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다.
이러한 경험을 꺼내는 것은 당시 미 해군의 교육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전술적 수준에 치우친 훈련은 단지 미 해군만의 문제도 아니다. 현존하는 전 세계 모든 해군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영국 수상이자 해군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증기 시대 영국 왕립해군의 전략적 지식과 통찰력 수준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해군은 임무 특성상 교육과 훈련이 항해와 기술적인 분야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향후 반드시 필요한 군의 역사와 전쟁술 전반에 걸친 폭넓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폭을 크게 제한한다”라며 한탄하기도 했다.1 당시와 같이 현재에도 해전은 매우 기술 집약적인 분야이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 해군은 증기 공학, 포술 및 사격 통제 등의 분야에 대해 연구해야 했고, 오늘날에는 이에 더해 미사일 및 항공 기술, 첨단 센서 및 컴퓨터 그리고 사이버 전쟁 및 인공 지능과 같은 복잡한 분야까지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칠 시대와 마찬가지로 해군에 막 입문한 나와 같은 초급장교가 이 모든 분야를 섭렵하기에는 가혹하리 만큼 시간이 부족하다.
이 책은 이렇게 늘 부족한 시간에 허덕이는 초급장교들을 위한 입문서이다. 다른 모든 입문서가 그렇듯 이 책 역시 매우 짧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짧은 글을 쓸 시간이 없어 긴 연설문을 썼다고 재치 있게 말한 적이 있는데, 이를 통해 트웨인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아마도 두서없는 긴 글을 쓰기보다 핵심을 파고드는 짧은 글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불필요한 글을 정리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통해 해양전략의 기초를 집약하여 설명하고자 했다. 해양전략과 관련하여 큰 꿈을 키우고 있는 초급장교, 국회보좌관, 막 학위를 끝낸 대학원생이 몇 시간 만에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 말이다. 작전적 수준의 임무에 대한 이해를 높임과 동시에 추후 중간관리자로서 군사연구기관이나 민간대학교에 입학하여 관련 주제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공부를 할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책에 대한 설명은 이만하면 거의 다 한 것 같다. 지금부터는 이 책이 담고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이 책은 해양전략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해양전략은 “대”전략(grand strategy)의 한 줄기다. 이는 미국과 같은 대외 및 무역 지향적인 국가의 최고 지도부가 국가 목표를 수립하고 예산을 마련하며 외교, 경제 및 군사자원을 투입하는 등의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 동시에 해양전략은 더 광범위한 전략 범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혹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지상전, 공군력, 사이버전 또는 해상 무역, 상업 및 군사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주제들 역시 모두 중요하며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으나, 이 책은 짧고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다루지 않았다. 어떤 내용을 포함시키고 제외시킬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전략적 내용의 상당 부분을 다루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 군사 전문 교육기관들이 역사적으로 최고의 전략가라고 손꼽는 프로이센 군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나 중국 전략가 손무(Sun Tzu)에 대한 내용 역시 깊게 다루고 있지 않다. 그들이 역사상 뛰어난 전략가임에는 틀림없으나 해양전략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인도의 이론가 카우틸랴(Kautilya)나 중국 군사전략의 핵심으로 남아있는 “적극 방어(active defense)” 개념을 주창한 마오쩌둥(Mao Zedong) 역시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책을 해양전략이라는 분야를 처음으로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후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하나의 시작점으로 활용해 주길 바란다.
둘째, 전략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전술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내가 생도시절 출판된 웨인 휴스(Wayne Hughes) 대령의 함대 전술(Fleet Tactics)이란 서적과 함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 휴스 대령은 그의 책을 통해 상선과 군함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대양을 가로지르는지에 대한 이유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는 위기 또는 전시에 각 개인이 전술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전략과 전술에 대한 이해를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 결국 전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전략가들이나 정책가들은 전술부대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정책과 전략을 내놓기도 한다. 전략이라는 개념에 익숙지 않은 전술가들은 최고 지도부로부터 하달된 임무에 대해 막연하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더 큰 목표에 대한 이해 없이 수행한 임무의 성과가 좋을 리 만무하다. 요컨대 전략적 그리고 전술적 단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격차의 폐해는 이보다 더 크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는 것이 군사 교육의 핵심이다.
셋째, 나는 해양전략에 관한 모든 지식을 총망라하고자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머핸이나 콜벳과 같은 선구자들이 해양에 대해 연구한 내용들을 담고자 했지만 모든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 머핸은 저술한 책 목록만 정리해도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그 양과 범위가 방대하다.3 콜벳의 경우 저술한 책의 양은 머핸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통찰력만큼은 머핸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대신 이 책에는 해양전략에 대해 25년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석한 나의 견해를 담았다. 나는 해양전략을 연구함에 있어 이른바 “플러그 앤 플러그(plug-and-play)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정치적, 전략적 목적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머핸의 글을 참고하지만, 해양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글을 참고하는 것이다. 모든 학자가 이와 같은 방식에 동의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해양분야에서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고전을 탐독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혹 독자들 가운데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러한 경우에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사실상 창조적인 불화는 군 입장에서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정 행동 방책에 대해 토론하면서 그러한 방책의 강점, 약점 및 오류를 보다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으므로 주어진 상황에서 행동해야 하는 방책의 전반에 대한 이해를 용이하게 한다. 이로써 지휘관 또는 정치적 지도자들이 최대한으로 가용한 정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조직 전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조직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한 변화 속에서도 민첩하게 새로운 시각을 견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 책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미주를 참조하는 것이다. 미주를 참고하도록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히 학문적 청렴성에서 기인하기보다 이 책을 보충할 수 있는 참고서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다양한 참고서를 읽음으로써 해양전략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본인 스스로 흥미로워하는 분야와 향후 경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을 찾아 인용된 구절을 읽고 그 내용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살펴보면 향후 나아갈 방향성을 찾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클라우제비츠에 대해 제1장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잠깐 소개를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아 몇 마디를 남기고자 한다. 전략은 단순히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매뉴얼, 공식 또는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군이라는 직업을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발상이며 패배하는 지름길이다. 그는 전략이론이 누군가 매번 새롭게 전략의 구성요소를 정리하고 개발할 소요를 없도록 하는데 그 “존재” 목적과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4 이론은 누구나 참고할 수 있는 참조점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를 알면 장교와 공무원은 클라우제비츠, 머핸, 콜벳과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미 생각한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략과 군 역사에 대해 읽는다는 것이 “미래 지휘관이 될 준비를 하는 것, 더 정확하게는 독학을 통해서 깨우쳐 나가는 것이다… 이는 흡사 지혜로운 교사가 젊은이의 지적 발전을 지도하고 자극하되 평생 그의 손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과 같다”(필자 강조)라고 말했다.5 클라우제비츠의 말은 놀랍도록 현대적으로 들린다. 오늘날 학자들은 졸업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스스로 읽고 공부하는 “평생 학습”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한다. 평생 학습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슬로건이 만들어지기 수십 년 전에 이미 평생 학습의 미덕을 파악했던 클라우제비츠에 비하면 후세는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후배들은 필자보다 일찍 공부하고 클라우제비츠가 그토록 강조했던 평생 학습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모든 견해는 오롯이 필자의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