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이 1986년 6월이다. 그 후 세 번에 걸쳐, 즉 1990년, 1995년, 그리고 2008년에 재쇄를 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법학 번역서로서는 많은 관심을 얻었다고 할 만도 하다. 재쇄 때마다 상감의 방법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수정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4쇄 때에는 활판 인쇄소가 모두 사라져서, 엉성하기만 한 짜깁기조차 간신히 행하여졌다. 그리고 당시 이미 지형紙型이 꽤나 낡아서 더 이상은 이것으로 인쇄하기 어려워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재쇄로부터도 많은 세월이 흐른 이제 컴퓨터 조판으로 아예 모습을 달리하는 신장판新裝版을 내기에 이른 것은 역자인 나로서는 역시 기쁜 일이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불만이 있었음에도 그대로 두었던 곳을 여기저기 손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 책이 발간되던 1979년의 ‘서독’은 그 후 동독과 통일되었으므로 모두 ‘독일’로 바꾸었고, 또 그렇게도 많이 들어갔던 한자 용어를 모두 한글로 갈아 넣었다.
그러나 물론 번역을 새로 하였다고, 따라서 이 책을 개역판改譯版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기본적으로 종전의 것을 유지하였다. 그래서 번역 작업에 대하여 스스로 품은 불안함에서 나온, 지금 보면 어색하다고 하여야 할 것(대표적인 예는 많은 원어를 괄호 안에 넣어 밝혔다는 점이다)도 그대로 두었다. 내가 이 번역 작업을 한 것은 1985년 봄으로서(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나는 법원에서 학교로 일터를 옮겼다) 이미 37년이 지났으니 세월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 사이에 나는 대법원에서 일했고 대학교수의 직을 정년으로 물러났으며 작년 가을에는 나를 위한 고희 기념 논문집 자율과 정의의 민법학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제3쇄 역자 후기에서도 밝힌 대로 저자 라렌츠는 일찍이 1993년에 사망하였다.
이번 책을 내는 데 애써 준 박영사 편집부의 김선민 이사님에게 감사드린다.
추기: 역자 후기에 적은 ‘비리법권천의 논리’에 대하여 이 책 출판 후에 몇몇 분에게서 질의를 받았다. 이 일본의 법언에 관하여는 무엇보다도 瀧川政次郞, 非理法權天: 法諺の硏究(2015. 원래는 1964), 19면 이하 참조. 특수하게 일본적인 이 표현(위 책, 1면: “일본의 법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을 나는 처음 판사로 일할 때 선배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는데, 법을 이理보다 앞세우고 권權에 좇게 하는 그 가치 지향에 쉽사리 수긍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