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외에 ‘노천아(盧川兒)·양아(良兒)·철연이’ 등의 여러 필명을 사용했다.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 명성리에서 태어나 개성의 송도고보를 졸업했다. 그 뒤에 금천, 개성, 철원 등지의 보통학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며 와세다 대학의 통신강의를 수강했다. 식민지 말기에 그는 하라다(原田)로 성을 바꾸고, 1940년 6월 친일단체 동심원이 주최한 동요동화대회에 출연해 이름을 더럽혔다.
그는 1925년 3월 ≪동아일보≫에 시 <거짓 말슴>이 선외작으로 뽑힌 것을 시작으로, 여러 신문사의 현상문예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30년 1월 ≪중외일보≫ 신춘문예에 말의 전설 부문에 <의마>를 응모해 당선되었다. 이어서 193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요 <단풍>이 가작으로 뽑힌 동시에 동화 <의좋은 동무>가 2등 당선되었다. 또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눈 오는 날>은 가작으로 선정되었으며, 1935년 같은 신문의 신춘문예에 동화 <참새와 구렝이>가 선외가작으로 뽑혔다. 이해에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가요공모전에 <조선 학생의 노래>가 당선되었으나, 가사 내용이 문제되어 교직에서 쫓겨나 금강산 등을 여행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날아다니는 사람>을 응모해 당선되었고, 1937년에는 ≪매일신보≫의 신년현상문예에 동요 <학교길>을 응모해 병에 당선되었다.
노양근은 근대아동문학사에 필히 점검되어야 할 작가로 거론된다. 이 시기는 아동문단이 제도화되어 가던 중이었으므로, 그의 문학 활동은 아동문학의 장르 형성 과정을 살피기에 알맞다. 지금 구해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집은 두 권이다. 1939년에 출판된 동화집 ≪날아다니는 사람≫(조선기념도서출판관)은 “동화의 본질적 사명인 문학적 가치와 종속적 사명인 교육적 가치가 상반(相伴)되어 있어 아동은 물론, 어른이라 하더라도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김태오)고 추천되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20여 편의 동화는 도처에 마련한 웃음 덕분에 상당한 재미성을 담보한다. 그 반면에 강한 교화성을 작품의 근저에 장치하고 있어 흠결로 지적된다.
장편 소년소설 ≪열세 동무≫(한성도서, 1940)는 노양근의 이름을 문단에 알린 문제작이다. 이 소설집은 “현실이 요구하는 가장 지도적 농촌인물로서 우리는 춘원의 ≪흙≫ 속에서 허숭을 발견했고, 이제 다시 ≪열세 동무≫의 주인공 시환을 얻었다”(박흥민)고 평가받았다. 이 작품은 한국 아동문단에 본격적인 장편소설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도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