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부터 지금가지 그렇게 살아왔다. 한 번도 쉬어 본 일 없이, 정해진 시간표 대로 준비하고 일하고, 그리고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모범생의 습관이었다. ... 등단을 했던 서른 중반 무렵에는 그것이 극에 달해서 슈퍼우먼이 되려고 고군분투했다. 뭐든지 다 잘해야 된다는 강박증이 나를 볶았다.
... 그런 모범생 의식이 내 삶의 방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쓰는 소설도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렇게도 정답이라고 여겨서 좇아가려고 했던 그 방식이 사실은 극복해야 할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그런 생각이 든다.
살아온 습관을 바꾸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조금씩 생각의 틀을 바꾸어 볼 참이다. 오래 걸리더라도 천천히, 한 걸음씩, 그렇게.
좀 부끄럽다.
작품집을 내는 것이 부끄러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이 부끄럽다. 너무 늦게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러나 부끄러워도 한 걸음을 떼어 놓기만 하면 앞으로 걸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몸을 던지는 기분으로 눈을 감고 부끄러움을 무릅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