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굳이 살아지니라. 삶은 구슬과 같다. 금간 구슬도 고요히 아름다운 법이다. 꿰어두어라.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시 부문) 당선,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그라시재라>, 장편 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출간. 2011년 거창평화인권문학상, 2022년 노작문학상 수상.
초월리에 갔다.
들판으로 가을 햇빛 투명하게 쏟아져,
선한 나무들이 먼저 얼굴을 붉혔다
미꾸라지가 아이들을 돌 틈으로 몰고 다니고,
강은 해산 중인 산수유나무를 붙들어주고 돌아와
귓불을 식히는 중이었다.
저마다 수런수런 제 일을 맺어가는
종아리 그을린 논둑을 굽어보았다.
계절 지난 샌들을 신은 발등이 죽은 사람 발 같았다.
걸어도 부끄럽고 걷지 않아도 부끄러웠다.
칼집을 열고
칼을 내려놓았다.
나는 자웅동체이니,
내 안에 간장(干將)과 막사(寞邪)가 살아,
풀무는 새 불을 피우고, 머리털과 손톱도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