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책을 내며....
그레고리안찬트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늘상 듣던 얘기가 있다. 한국적인 성가를 쓰고 싶은데 책마다 설명이 다르고 용어도 달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관련 내용을 보면, 중심음과 종지음이 일치하는 한국민요를 도미난트(중심음)와 파이날(종지음)이 다른 교회선법에 잘못 적용하여 혼란스러웠던 때가 있었고, 오선보로 옮긴 영산회상에는 플랫이 6개가 붙어 있어 난해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산조가야금 조현표를 보고 합주곡을 쓰면 다른 악기와의 키가 맞지 않아 연주 불가능이요, 수행하는 음악 범패라지만 아무리 들어도 수행보다는 민속적 심성이 느껴지니 어찌된 것일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신부님과 수녀님을 만나며 선법체계를 파헤치고, 실음보다 5도 낮은 음의 가야금과 절대음으로 고정된 대금을 왔다갔다 견주어 보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 나의 유파가 제일 멋지다는 주장들이 팽팽하였다. 그리하여 개성이 다른 유파들을 비교하고, 스님들이 어떻게 수행하며 소리를 짓는지 전국 곳곳을 누비며 만나 보니 애초에는 수행율조였을지 모르지만 조선시대 억불을 맞아 민간화 되었고, 그 원류에는 고대 인도문화가 있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부터 흐르는 문화의 강줄기를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이십여 년이 흘렀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간의 고민들이 사라져 버렸으니 어찌된 일일까? 알고 보니 하나의 중심음(key)으로 평조와 계면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악사들, 사투리 말씨대로 부른 민요를 서양식으로 설명하다 보니 어려운 것이었지 우리 음악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본 책에서는 서양의 교회선법과 조성, 한국의 산조, 인도와 연결되는 한국 범패를 통해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요즈음 국악창작곡은 주로 25현을 사용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한국적인 기악은 산조, 성악은 범패를 꼽을 수 있다. 또한 산조는 육자배기토리, 범패는 메나리토리의 정점이기도 하여 한국전통음악의 악조적 양상을 파악하기에도 좋은 대상이다. 세계 속 우리음악의 개성을 활용하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장르가 없으리라.
문명과 음악에 이어지는 본 책은 음악의 토양인 생활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전공자들을 위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망원렌즈에서 현미경으로 초점을 좁혀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부록에 수록된 악보와 관련 음원을 통해 심도있는 감상의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그레고리안찬트에 대한 감상자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아마추어 산조 동아리 회원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악보는 어디까지나 음악의 실체와는 무관한 기호이므로 음원이 없는 것은 살아있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리하여 본 책에서는 누구라도 쉽게 찾아 듣고 살펴볼 수 있도록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음원, 혹은 비매품이라면 음원을 구할 수 있는 경로를 안내하고, 저작권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필자의 인터넷 카페(다음:윤소희카페)에 실어두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소통을 위해 국악은 서양음악 전공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서양음악은 국악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용어와 서술 방식을 바꾸어 설명하였으므로 각각의 전공자들이 이를 읽으면 유치하게 이런 것까지 구구절절이 늘어놓느냐거나 용어가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지적을 무릅쓰고라도 과도한(?) 친절과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서로 다른 분야의 소통을 위해서이다. 이렇듯 문명과 음악 , 문화와 음악의 키워드는 소통이다.
역사는 오해와 왜곡과 착각의 점(點)들이 이어진 선(線)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지에 의한 인류 보편의 오해, 승자에 의한 사실의 왜곡, 개인에 의한 자기중심적 착각의 인간이라, 학문도 끊임없이 수정되고 새로이 해석되어왔다. 종교음악은 궁극적으로 신비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소리의 발생과 음을 인식하는 인간의 원초적 행위와 의례화에 이르기까지 궁금증이 끝이 없어 스스로를 초보자라 여기며 지구촌 곳곳을 찾아다니며 눈에 띄는 얘기들을 음악과 연결지어 보았다. 그러나 훗날 이 발자취를 돌아 볼 때, 많은 오류와 수정 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선학들의 부족함이 나의 성장의 지렛대가 되었듯이 나의 부족함이 후학들의 비판거리라도 된다면 그것으로 위안 삼으련다.
각각의 전문분야가 깊어지다 보니 자신이 잡고 있는 것이 코끼리인지 바위인지 모른 채 상대의 한 톨을 흠집 잡는 것이 학문의 권력이 되는 세태가 답답했다. 좀 서툴더라도 일단은 내가 잡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려 헤매다 보니 음악은 노래가 출발이고, 노래는 말에서 비롯되었음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 말 저 말을 공부하다 보니 떨어져 있던 섬들이 한 덩어리 지구가 되어 돌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본 책에서는 서기전 7500년 무렵 아나톨리아어로부터 농경과 경제 확산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로 퍼져 나온 인류 언어의 이동에까지 오지랖을 넓혀 보았다. 반도체와 K팝이 지구촌 대중문화를 흔들고 있는 요즈음은 포노사피엔스 시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기에 지식의 전달보다 직접 겪은 일들에 방점을 두어 문명과 음악을 지난해 가을에 출간하였다.
서학이 들어온 이후 우리들이 배웠던 세계사는 이제 와서 보니 기독교계열 문화권의 유럽사였다. 음악적으로 보면, 일본 강점기에 수용된 서양음악인지라 우리에게는 감이 잘 잡히지 않는 용어가 많다. 예를 들면, 절대군주에서 비롯된 도미난트도미난트(Dominant)를 딸림음으로 번역한 것이다. 천황을 무조건 따른다고 딸림음이라 번역했을까? 일본 사람들의 심성에는 맞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에게는 영 와 닿지 않는다. 파이널(Final)과 기본의 의미를 지닌 타닉(Tonic)은 으뜸음이라 하였다. 이 또한 지극히 전체주의적 발상 아닌가? 언어라는 것이 한 번 굳어져 버리면 바꾸기가 어려우니 이 책에서도 그대로 쓰긴 하겠지만 늘 찜찜하다.
수상하고 낯선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수행하는 스님들이 왜 노래를 하는지, 한국의 범패에서 도무지 수행의 느낌이 안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정체를 찾아 인도부터 티벳이며 아시아 곳곳을 다녀보니 인도의 힌두사제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에게 소리는 우주와 자아가 하나 되는 매개였다. 이렇듯 아시아문화에 한없이 젖어갈 즈음 문득 지구 반대쪽 사람들은 이런 음악을 어떻게 느끼는지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고, 나의 눈으로 타인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서양음악과 그레고리안찬트가 되살아났다.
그레고리안찬트는 서양음악의 모태이기도 하지만 한국전통음악의 근대 음악화 과정에 악조 이론의 본보기로 모방한 측면도 많다. 평조는 솔선법, 계면조는 라선법이라 하였는데, 이는 사실 교회선법의 원리를 표피적으로만 이해하여 그 용어만 차용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선법 원리와 맞지 않는 시행착오들이 논문과 학설이 되어 후학들은 그대로 따랐다. 이러한 오류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선법의 종지음이 조성음악의 key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계면조를 미선법이라고 한 경우가 있는 데다 한국전통음악의 악조를 종지음에 따라 5가지 선법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필자가 선법과 한국전통음악의 변조로 석사논문을 쓰겠다고 하니 너는 졸업하기는 글렀다고 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을 알아낼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돈키호테의 첫발을 내딛었다. 막상 선법에 관해 탐문을 시작하고 보니, 교회선법의 원리를 아는 사람은 서양음악계에도 없었다.(적어도 그 당시 필자의 정보와 인연 중에는...) 그리하여 당시 그레고리오성가에 관해 책을 펴낸 바 있는 최민수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수소문 해 보니 연로한 신부님이 병원에 입원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가 못 되었다. 그렇게 하여 만난 분이 순교복자회의 수녀님이었다.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수녀님도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듯 하거니와 그분의 세례명도 잊어버렸지만, 그때 수녀님이 강조하신 핵심 키워드 핵사코드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학위논문을 발표한 바로 그 무렵 부산가톨릭대학교의 윤 신부님이 바티칸에서 음악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직후였다. 신부님을 만나 새로이 선법에 대한 공부를 하였으니, 석사논문은 출발이었고, 선법에 대한 진짜 공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결과로써 얻게 된 내용들을 문화와 음악에 담았지만 이 또한 훗날 돌아보면 고쳐야 할 것이 많으리라.
불교와 유교적 관습에 젖어 있던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와 100년에 가까운 박해시기를 지나 1891년 파리 외방선교사들에 의해 나전어사전Parvum Vocabularium Latino-Coreanum과 그레고리오성가에 대해서도 공부가 시작되었다. 종교는 으레 율조와 함께 전파되는 것이므로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올 때부터 범패에 대한 탐구도 있었겠지만 근세기 한국의 범패연구는 주로 오선보 채보와 악조파악에 머물러 왔다. 이와 달리 필자는 범패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푸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하여 문명과 음악을 통해 지구촌 종교음악과 한국의 범패가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를 인류학적 관점으로 풀어 보았다. 이렇게 풀다보니 범위가 너무 확대되어 음악적 실체에서 다소 멀어졌다. 그리하여 제2권인 본 책에서는 이들 음악을 줌 인하여 선율 전환 방법인 변조·전선법·전조의 과정을 범패·그레고리오 성가·산조를 통해 비교 분석하였다.
이 책을 쓰기까지 나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신 은사 권오성 선생님과 그외 여러 스승과 선후배, 필드웍 과정에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여러 수행자들과 은인들, 때마다 나를 이끌었던 보이지 않는 손과 그 손을 대신해 주셨던 수많은 은인들에게 감사드리며, 늘 소홀했던 나의 가족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호의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다가온 한국문화사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0. 이른 봄에 퇴계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