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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주요한

성별:남성

출생:1900년, 평양 기림리 (사수자리)

사망:1979년

최근작
2021년 11월 <그대, 인생은 알고 있는가>

주요한

송아(頌兒) 주요한(朱耀翰)은 1900년 12월 5일(음력 10월 14일) 평양 기림리에서 목사인 아버지 주공삼(朱孔三)의 4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소설가 주요섭(朱耀燮), 극작가 주영섭의 형이다. 송아지, 목신(牧神), 주락양(朱落陽), 벌꽃, 낙양(落陽) 등의 필명을 사용했으며, 일본명은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이다. 평양숭덕소학교 재학 중이던 1912년 말 도쿄 유학생 선교 목사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를 졸업하고 도쿄제일고등학교를 다녔다.

메이지학원 중학부 재학 시절 문학에 심취해, 시인 가와지 류코(川路柳虹)의 집을 드나들며 시를 배웠다. 1916년 10월 ≪문예잡지(文藝雜誌)≫에 <5月雨の朝>가 가작 당선된 후 1919년 2월까지 ≪아케보노(曙)≫, ≪수재문단(秀才文壇)≫, ≪반주(伴奏)≫, ≪현대시가(現代詩歌)≫ 등 일본 문예지에 40여 편의 일문 시(日文詩)를 발표한다. ≪청춘≫(1917. 11) 현상 소설 모집에 ‘낙양’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마을 집>을 투고해 2등 당선했으며, 1919년 1월 경도(京都) 유학생들이 발행한 ≪학우≫ 창간호에 <니애기>를 비롯해 5편의 시를, 같은 해 2월에는 김동인·최승만·김환·전영택 등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창조(創造)≫에 <불노리> 등 4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펼친다.

3·1운동 발발을 계기로 1919년 5월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한 뒤 이광수와 함께 임시 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기자로 활동한다. 임시 정부가 와해 상태에 놓이자 임시 정부 관련 활동을 그만두고, 1925년 상하이 후장대학(滬江大學)을 졸업한 뒤 귀국해서 ≪동아일보≫ 취재기자·편집국장·논설위원, 그리고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편집국장·논설위원·전무 등을 역임한다.

1924년 첫 시집 ≪아름다운 새벽≫을 간행했고, 1929년에는 이광수, 김동환과 함께 ≪삼인작 시가집(三人作 詩歌集)≫을, 1930년에는 시조집 ≪봉사꽃≫을 상재했다. 안창호, 이광수와 교류했고 도산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흥사단과 수양동우회에 가입·활동하면서 실력 양성 운동과 사회 계몽 운동에 힘쓰다가,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이광수, 전영택 등과 함께 전향했다. 이후 일제 총독부 체제에 순응하면서 전시 체제기에는 조선문인보국회, 조선언론보국회 등의 단체에 가담해 적극적으로 대일협력 활동을 했으며, 제5회 조선예술상 문학상을 수상한 와카 형식의 일본어 시집 ≪손에 손을(手に手を)≫(1943, 박문서관)을 비롯해 다수의 친일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35년 화신상회(和信商會)에 입사해 이사 등을 역임했고, 광복 후에는 기업인과 언론인, 그리고 정치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흥사단에 관여하면서 1945년 조선 상공회의소 특별위원에 선출되었고, 1948년 대한무역협회장,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1954년 호헌동지회에 참여한 뒤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했고 1958년 서울 중구에서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60년 5월 출마해 재선했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에서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5·16 이후에는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대한일보사 사장(1965∼1973),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1979년 11월 17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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