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고등학교 시절 영남일보에 영재하며 만화계에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으며
1966년 상경후 <여학생>지에 '이상무' 라는 가명으로 '노미호와 주리혜' 라는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고 1971년 본인의 페르소나인 불세출의 캐릭터 '독고탁'을 만들어
사망하기 전까지 그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 300여 타이틀을 그리며 70-90년대까지는 독고탁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누구보다 만화를 사랑했던 그는 생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화실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었단 사실이 알려져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는 작가의 유족이 '독고탁 컴퍼니'를 설립, 독고탁 정신을 이어나간느 작업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
내 만화인생에서 야구는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이틴 잡지에 꽁트 만화 <노미호와 주리혜>를 시작으로 찔끔찔끔 꽁트 만화를 그리다가 장편 줄거리 만화를 시작하면서 독고탁을 탄생시켰고 그 첫 작품이 야구를 소재로 한 <주근깨>였으니 말이다. 그 후로도 줄기차게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즐겨 그렸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야구에 대한 나의 짝사랑 때문이었던 듯싶다.
야구놀이를 좋아했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정식 야구부가 창단된다고 했을 때 나는 야구부에 들어갈 꿈에 한껏 들떠 있었으나 창단되는 야구부는 준비기간을 위해 4, 5학년에서만 선발하는 통에 6학년이던 나는 아쉽게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야구유니폼을 입고 연습하는 후배 학년 야구부원들을 너무나 부러워했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나는 만화가가 되어서도 모든 사건을 야구에 접목시켜 얘기를 풀어나가기를 즐겼다.
승부와 우정, 불신과 믿음, 오해와 진실, 화해와 용서 등 인간의 갈등구조를 야구를 통해 풀어나갔었다. 또한 야구는 단체경기이면서 투수와 타자 간의 1대 1의 승부로 극적인 대립관계를 설정할 수 있었기에 많은 작품에서 이를 응용했었다. 그러다보니 작품에서 때론 비정하고, 때론 어두운 면이 없지 않았다. 81년 《소년중앙》에서 새로운 연재물을 청탁 받았을 때 나는 고민에 빠졌었다. 몇 년 전, 같은 잡지에 <우정의 마운드>라는 야구만화를 연재했었던 터라 좀 다른 패턴의 야구만화를 그리고 싶어졌다. 어린이 잡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좀 더 유쾌하고 재미있고 신나는 새로운 야구만화를 그려보자고 시작한 것이 <달려라 꼴찌>였다. 연재 시작 후 독자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3년 가까운 기간의 연재를 끝내려 하자 독자의 성원과 아쉬움이 크니 2부를 계속하자는 《소년중앙》 측의 제의가 왔다. 아니, 거의 명령에 가까운 강권이었다. 처음 구상한 내용이 다 끝난 터에 다시 2부를 이어 간다는 것이 여간 난감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교야구를 다뤘던 1부와 달리 마침 프로야구가 태동되어 붐을 이루는 국내 상황에 맞춰 2부는 프로야구를 배경으로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6년 가까운 세월을 나는 <달려라 꼴찌>에 매달려야 했었다. 그리고 뜨거운 독자의 성원에 행복했었다.
이제 30여 년이 흐른 후 다시 <달려라 꼴찌>가 재발간 된다 하니 감회가 새로우면서 부끄러운 감정이 앞선다. 우선 그림의 컷들이 요즘에 비해 너무 단조롭고 어설프게 느껴지고 시대성도 달라 어색한 부분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당시 독자였던 40, 50대는 나름 추억을 느끼겠지만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게 읽혀질지 그것 역시 매우 궁금해진다. 재발간에 기회를 준 만화영상진흥원에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