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전공하다가 의사가 되었다.
궁극에는 사람에게 더 다가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허했다. 어떤 치유도 사랑을 품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였다.
어떤 날은 사망진단서를 5장이나 발급하는 날도 있었다.
수 백 장의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면서,
사랑에 대한 믿음은 신앙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시인이 되었다. 문예지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하고,
<유리에 가서 불탄다> <푸른 염소를 부르다> 등의 시집도 냈다.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사랑을 놓치지 않는 사람은
평화를 안고 먼 길을 나서고,
사랑의 끈을 놓친 사람들은 천길 물속 같은
아련한 회한을 가지고 떠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절망하기도 했다.
나아가 사랑은 상처를 품으면서 자란다는 것도 알았다.
그 상처를 자양분으로 자란 사랑이 사람을 꽃피우는 모습을 보면서는
희열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