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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예술

이름:나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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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은밀한 속삭임>

나윤덕

서울에서 태어나 이십 대 초반에 이탈리아에 갔다.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며 십여 년을 로마에서 보냈다. 로마 억양이 깃든 이탈리아 말을 구사하고 이탈리아어의 운율과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 저술한 책으로는 을유문화사에서 출판된 <나보나 광장에서 베르니니와 만나다: 로마가 사랑한 다섯 미술가>가 있으며 그라치아 델레다의 <코지마>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그리고 <엘리아스>를 번역했다. 현재 엘사 모란테의 <라 스토리아>를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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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 2023년 8월  더보기

바람을 좋아한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더위를 식혀주는 여름 바람, 살을 에는 겨울바람도 나름 매력적이다. 바람은 천 개의 목소리를 지녔다. 속삭이는가 하면, 때로 휘몰아치기도, 때로 휩쓸어버리기도 한다. 누구도 바람을 막을 수 없다. “우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지요, 나의 에스테르 아가씨. 그 때문이에요! 우리는 갈대이고, 숙명은 바람이지요.” 사나운 팔자를 탓하는 여주인에게 늙은 하인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왜 태어나는 걸까?” “오, 그런 말 마세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죠!” 젊은이의 넋두리에 늙은 하인이 잘라 말한다. 탄생부터가 신비스러운 일이니, 숙명은 말할 것도 없다. 바람처럼,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핀토르 가문을 위해 평생 몸 바쳐 일해온 늙은 하인의 이름은 에픽스이다. 이야기는 에픽스가 기거하는 초가집이 있는 농장의 밤을 묘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저녁 기도와 더불어 해가 지고 인간들의 시간이 끝나자, 달빛 아래 혼령들, 요괴들, 요정들이 나와 오래된 성과 언덕과 강물에서 노닌다. 그 장면이 어찌나 매혹적이든지, 첫 장을 옮기며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가 피땀 흘려 일군 농장은 혹독한 노동을 요구하는 장소인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장소이기도 하다. 나무와 강과 갈대, 바람과 해와 구름, 바위와 산, 새와 나비, 꽃과 열매가 있는 그곳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자연이 지배하는 곳이다. 생명이 있는 존재마다 영혼이 깃들어 있고, 밤이 되면 죽은 영혼들까지 나와 노니는 곳, 이성과 논리와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이 지배하는 곳이다. 반면에 핀토르 가문의 세 자매가 사는 저택이 있는 마을은 인간의 법칙이 지배하는 장소이다. 몰락한 귀족의 허물어져 가는 저택,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 묻히지 못한 유골들이 즐비한 무덤, 빛바랜 바실리카 성당이 있는 그곳을 지배하는 건 돈과 지위와 권력이다.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은 돈을 세고, 물건을 사고팔고, 사채업을 하고, 재산을 불린다. 이성과 숫자와 물질이 삶을 지배하는 곳이다. 에픽스는 자신의 피와 눈물을 빨아들인 농장에서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 싶었지만, 핀토르 가문에 불어닥친 소용돌이는 하인이었던 그마저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았다. 농장에서 나오는 수확으로 세 자매를 먹여 살리는 것도 모자라, 그는 집을 나간 리아 아가씨의 철부지 아들 자친토까지 챙겨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모든 게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자 속죄의 과정이라 여기며, 그는 담담히 앞으로 나아간다. 아무도 자신의 숙명조차도 탓하지 않는다. 오직 주인 아가씨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며, 주어진 삶의 자루를 오롯이 짊어지고 나아간다. 에픽스의 삶이야말로 하찮은 존재가 고귀함에 다다르는 여정이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태풍이 찾아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맹위를 떨쳤던 더위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더니 세찬 바람과 빗소리가 들려온다. <코지마>와 <엘리아스>에 이어 그라치아 델레다의 작품을 세 권이나 번역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두루두루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1913년 8월 20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번역한 한국어판은 무려 11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2023년 8월에 세종에서 출간된다. 이 또한 숙명이라는 바람에 실려 온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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