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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문학일반

이름:다카하시 토시오

국적:아시아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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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일본현대문학>

다카하시 토시오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문학연구과 교수. 문예.사회.연극평론가이다. 대학에서는 ‘전쟁문학론’, ‘호러.괴물론’, ‘아이누문학 오키나와문학론’ 등의 강의와 현대문학의 세미나를 가르치고 있다. 와세다축제의 학생 앙케이트에서 ‘와세다에서 가장 흥미로운 수업’에 뽑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호러 소설과 오키나와문학, 시대소설을 연관시켜 새로운 비평.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집영사(集英社) 집념의 대기획 <컬렉션 전쟁×문학(コレクション 戰爭×文學)>(전 20권)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2000년대 이후의 저서로는, <이유 없는 살인 이야기 대보살고개론>(2001), <후지사와 슈헤이이>(오자키 호쓰키 기념 대중문학연구상 수상, 2002), <다카하시 토시오 서평집>(2009), <시대소설과 만난다!>(2007), <시대소설이 온다!>(2010), <시대소설이 간다!>(2013) 등 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일본이 이제 ‘전쟁이 가능한 사회’에 진입한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비평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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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일본현대문학> - 2014년 10월  더보기

무언가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위화감밖에는 없었다. 끊임없이, 초조함 가운데 있었다. 밋밋한 길이, 거리의 일그러진 풍경이 매일 접하는 물건이 텔레비전에서 흘러오는 환성이나 밝은 CM송이 엇갈리는 사람들의 무표정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것에 초조해하며 초조함을 그저 내부에 모아두고 있는 내 자신에게 애가 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러한 초조함을 무시라도 하는 것처럼 가르침을 받는 것, 지시를 받는 것에는 반대의 길을 선택해 왔다. 초등학교(小學校)에서는 오른쪽을 보라고 하면 왼쪽을 봤고, 차렷 하는 호령에는 쉬어를 했다. 국가 제창 때는 입을 다물었고, 노트를 열라고 하면 노트를 닫았다. 교사와의 대화는 언제나 “하지만……”으로 시작됐다. 불합리한 이유로 위압하는 상급생과의 싸움으로 학창 시절이 지나갔다. 하지만 싸우고 또 싸워도 전혀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전전, 전중에 반체제운동에 연관돼 가혹한 체험을 했던 양친은, 그런 나를 “작은 아마노자쿠(天邪鬼, 작은 귀신 모습으로 정반대 행동을 하는 요괴)야!”라고 불렀다. 내 초조함의 일부분은 가끔 방심한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양친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비평의 시작을 떠올리려 하다 보면 꼭 떠오르는 일상의 기억이다. * 그런 날들에 균열이 일어난 것은 중학교 2학년 여름이다. 14세 때였다. 한 권의 책 시작 한 줄이 나를 꿰뚫었다. <공산당선언> 가운데 “모든 지금까지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말. 이 말에 접했을 때, 내 초조함의 기원이며 내가 지금까지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어째서”, “왜”를 반복하기만 했던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거기에 커다란 힘이 충돌하는 세계가 출현했다. 그때 ‘계급’과 ‘계급투쟁’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도리어 편재하는 투쟁의 이미지는 선명하고 강렬했었다. 당시 해독하고 있던 나쓰메 소세키나 체호프의 소설로부터 얻을 수 없었던 사회의 동적인 이미지를 보게 됐다. 하지만 초조함으로부터 해방된 나를 홀연 보다 강한 다른 초조함이 붙잡았다. 투쟁을 통해 변경되어야만 했던 관계와 환경이 어째서 변하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사람들은 순종적으로 있는 그대로 다가오는 세계에 묶여있는 것으로만 보이는가. 도대체 다른 세계와 다른 삶의 방식을 타개하는 투쟁은 어디에 있다고 하는 것인가. 도대체 나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이러한 초조함과 물음이 내 비평 행위의 시작이 되었다. 또한――, 또한 이것이 지금에 이어지는 감정이며 물음이기도 하다. 여기에 수록된 비평문으로부터는, 그때그때의 강도와 감정과 물음 등이 떠오른다. “사회 안에서 사고하고 우려하는 인간=아마추어”(에드워드 사이드)의 비평을 채색해 가는 것과 같은 감정과 물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 이번에 한국에서 비평집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이미 스무 권 이상의 저작을 냈지만 이러한 선집 형태는 처음이다. 이 선집에서는 최신 비평부터 순서대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내 비평의 지난 역사를 더듬는 것보다는 최근의 긴박한 테마를 둘러싼 비평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서브타이틀인 ‘전쟁.호러.투쟁’이 주요한 테마지만, ‘3.11 후쿠시마 카타스트로프 후를 산다’ 및 ‘새로운 전전에 항거한다’ 또한 이 선집을 관통한다. 나는 지금까지 일단 다 쓰고 나면 바로 다음 비평으로 관심을 기울여서, 비평집을 정리할 때도 다시 글을 읽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는 번역자가 질문할 때 대답해야 하는 이유에서 오랜만에 과거의 비평과 차례차례 대면했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내 자신이 어리석은 국가, 어리석은 사회 안에서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감개가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리석고 오만한 국가에서 사회의 쾌활한 ‘묘굴인(墓掘人)’으로서 비평을 계속해 써온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만나고 공투(共鬪)한 작가와 작품 및 그때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많은 ‘동료’들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묘굴인’으로서의 지복이라 해야 할까. 이 선집의 간행은 두 가지 행운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 하나는 번역자인 곽형덕 씨와의 만남이다. 곽 씨는 와세다대학대학원 내 연구실에서 배우고, 컬럼비아대학대학원 유학을 거쳐 얼마 전 김사량 연구로 학위(문학박사)를 취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진 연구자다. 또 하나는 곽 씨의 소개로 김재용 교수와 만난 것이다. 김 교수는, 권력에 대항하는 문학적 저항의 역사를 연구하는 날카로운 기백의 학자로서, 또한 AALA의 대표자로서 지구적으로 활동하는 지식인이다. 본 선집의 출판을 열심히 종용해 준 한국의 동지(同志) 두 사람에게 깊이 감사한다. 2014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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