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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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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큰글자책] 칼국수 아줌마의 수육 한 접시>

이재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58년 초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0년 중학교 입시 무시험 첫 학령으로 1973년 경북고등학교, 1976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내과 전공의와 군의관 복무 후 1989년 경북의대 핵의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2023년 8월 정년퇴직 할 예정이다. 34년의 재직기간 중 국립대병원과 대학교의 다양한 보직을 역임했고, 대한핵의학회와 갑상선학회장, 보건의료산업 분야 공공기관장,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장 등을 지냈다. 같이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곳저곳 참견을 한 성과를 인정받아 2023년 의약평론가로 선정되었다. 30년 이상 계속된 종 수집이 특기가 되어 세상의 종에 관한 저서를 발간하였고, 몇 차례의 전시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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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 - 2020년 5월  더보기

2020년 대구의 봄 희망찬 한 해를 기약하던 연초에 우리를 기다린 건 불청객 코로나-19였다. 그건 결코 달콤한 추억이 될 수 없고, 그가 남긴 상처는 깊고도 진하다. 2020년 1월 20일 이후 우리나라에서 30명의 환자가 발생한 한 달 동안, 코로나는 먼 곳에서 발화된 큰 불에서 튀는 작은 불티를 보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2월 18일 대구에 첫 환자가 등장하며 모두의 일상이 무너졌고, 순식간에 온 도시가 적막과 공포에 휩싸였다.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매일 수십에서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타났다. 2월 29일 하루에만 741명이 진단되는 등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의 공간으로 번져들었다. 시민들은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수를 지켜보며 불안해했다, 확진된 환자는 순서대로 병원에 입원되었으나 곧 음압병실 용량을 넘어선 발생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의료시스템도 붕괴에 직면하였다. 대구의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의료계도 사태가 급격하게 나빠지자 극도로 긴장하였다. 전국의 의료인과 봉사자들이 대구로 달려왔고, 국민들도 안타까워하며 애를 태웠다. 중앙 정부와 대구시에서 코로나 병상을 확충하여 치료에 나섰고 수용하지 못한 중환자들은 광주, 전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병원에서 받아 주었다. 대구·경북과 인근 16곳에 생활치료센터가 설치되고, 대학은 학생기숙사를 제공하였다. 여기에 전국의 병원들도 의료진을 파견하여 동참하였고, 3000명 이상의 환자를 입소시켜 치료하였다. 의료진, 공무원, 군 장병, 관계 직원들 모두 방역복 속에서 땀을 흘렸다. 그 당시는 세상을 떠난 이웃에 마음 아파할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국민들의 공포감을 해결해주며, 지역사회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시민들도 스스로를 봉쇄하며 자제하였고 그동안 참 성실하게 살았다. 모두 깜깜한 어둠 속의 진흙탕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자 온통 먹구름만 가득한 하늘에서도 서서히 햇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나라에 코로나-19가 등장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동안 전국의 10,780명 확진자 중 대구 시민이 64%(6852명)였고, 경북을 포함하면 68.5%를 차지한다. 생명을 잃은 249분 중 대부분이 대구·경북 주민이었다. 이번 코로나-19 KOREA는 그야말로 대구에서 펼쳐진 코로나와의 전투였다. 나도 3월 한 달 동안 코로나의 현장에 있었다. 코로나의 공포는 두려웠고 때로는 섬뜩했다. 그러나 우리 이웃이 아프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정말 힘들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이 주어져도 하겠다고 자원했고, 생활치료센터로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모두 애타는 마음으로 달려와 주신 전국의 의료진, 자원봉사자, 공무원, 군인들과 함께 열심히 일했다. 대구로 봉사왔던 많은 분들은 전장으로 향하는 비장함으로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을 했다고 했다. 우리는 대구에 살며 매일 코로나 병원으로 무감각하게 뚜벅뚜벅 출퇴근을 했을 뿐이었는데, 이 도시에 들어오면 바로 무시무시한 코로나에 감염된다고 확신하는듯했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사는 이방인이었기에 실없는 웃음이 났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도우러 온 사람과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마음가짐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 의료인이라고 환자를 더 열심히 진료한 것은 아니겠으나, 아파하며 신음하던 가족을 더 안타까워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건 우리의 일이었고 그 누구에게 대신시키지 못할 나의 임무이라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결사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가정으로 돌아가는 이웃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람이 있었다. 퇴원하던 그들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긴 사연을 담은 감사의 편지를 남겼고, 평생을 살면서 나의 뒤에는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는 분도 있었다. 어느 주부는 자신보다 집에 남겨진 가족들을 보살펴 달라고 사정했다. 우리들 이웃의 애환을 제대로 느꼈다. 대구에서 코로나-19를 겪었더니 모두에게 감사할 일이 넘치고도 넘친다. 환자를 돌보며 도움을 준 것보다 내가 더 큰 마음의 선물을 받았고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의료진을 격려하고 환자들의 완쾌를 바라는 애절한 마음을 보내준 위대한 우리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감동했다. 모든 걸 제쳐두고 대구로 달려와 준 전국의 의료인, 공무원, 자원봉사자, 군인들 그리고 성원해 준 국민들의 따뜻함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사회공동모금회와 적십자사, 의사회를 통해 기증된 엄청난 후원금과 의약품, 식료품과 함께 전해진 국민들의 따뜻한 편지에 눈가가 촉촉해진 경우도 많았다. 오랫동안 대구에 상주하며 현장을 지휘한 정세균 총리를 비롯한 공무원분들의 헌신에도 감사드린다. 특히 가장 열심히 일했음에도 정치적 일정과 맞물려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던 권영진 대구시장의 진정성에도 심심한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학이사 신중현님이 코로나-19 대구 진료현장에서 있었던 의료인들의 기억을 우리 시대의 기록으로 남기자고 제안하였다. 아직도 코로나-19가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니 그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희생을 치룬 대구의 코로나-19 기록은 공식적인 백서로 남겨지겠지만,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일선 의료의 단상들은 또다시 망각의 과정을 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코로나 전사로 잘 알려진 김미래, 박지원, 이은주 선생께 동참을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동의해주셨다. 이에 더하여 많은 분들이 기꺼이 경험을 공유해주셨기에 마침내 이 글집이 나오게 되었다. 대구가 코로나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았다. 이 경험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기억의 절차에서 6시간 미만의 단기기억은 신경섬유 간의 접속에 의하여 이루어지나, 그 이상의 장기적인 기억은 이를 위한 특별한 단백질의 생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글집이 대구 의료현장을 기억하는 한 가지 단백질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이 고통을 받던 대구에 대한 혐오의 막말을 일삼은 모 여류소설가와 역사학자에게도 읽혀지길 바란다. 스페인 세비야를 기반으로 하는 축구팀 레알 베티스의 팬들은 “지더라도 베티스 만세 Viva er Betis manque pierda!”를 외친다. 간절한 팬심이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더라도 끝까지 대구 만세! Viva er Daegu manque pierda!”다.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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