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일본 도쿄東京 출생. 와세다早稻田대학 불문학 교수 역임, 현재 동 대학 명예교수. 일본시인클럽 회장 역임. 시집 『새로운 아침의 파도소리』 『물밑의 정적』 『모래 위의 글자』 『시미즈 시게루 시집』 등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그늘 속의 어스름한 빛』, 역시집 『이브 본느프와 시집』 등 저서 및 역서 다수. 서양화 개인전 다수 개최 및 화집도 발간함.
경애하는 김남조 선생님의 뜨거운 격려와 지도, 그리고 친애하는 권택명 시인의 따뜻한 우정과 도움에 힘입어, 이번에 저의 첫 한국어역시집 『모래 위의 글자』를 상재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인생에서 이런 꿈이 실현되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돌아보면, 한일 양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밀접한 문화교류를 이룩해왔지만 근대에 이르러 일본의 잘못된 식민지 정책이, 한국 국민들께 다대한 어려움과 고통을 강요한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이 기회를 빌려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언어 예술에 관계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국의 여러분들께, 자국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강제한 시기의 경험이, 얼마나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 새겨져 있을까 하고, 저 자신 깊은 고통을 느끼며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일본시인클럽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2011년 가을에 김남조 선생님을 비롯한 한국의 시인들께서 일본을 방문해주셨고, 그 다음 해 가을에는 일본 시인들을 서울로 초대해주셔서, ‘문학의 집 서울’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한층 더 교류를 깊게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또한 이 때의 한국 방문은 진정으로 우리 시인들에게는 서로 간의 마음을 가로막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감을, 새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시인이란 오직 ‘인간적 진실’과 연계되는 것을 그 책무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진실’은 다양한 민족이나 언어, 문화나 종교, 또는 생활습관의 상이 등을 넘어, 우리를 협력과 조화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믿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는, 너무나도 많은 갈등과 항쟁이 있으며 불행이나 비참함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런 까닭에 더 한층,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희망의 징조를 시의 언어 속에서 계속 탐색해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한, 시를 쓴다고 하는 행위를 통해, 존재의 궁극적인 긍정에 이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며 기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우주가 존재하고,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들과 당신들, 그리고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 이것만큼 자명하면서 이것만큼 놀라운 일은, 저로서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우주가 존재하지 않고, 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필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이 신비를 계속 질문해가는 것이, 언제부턴가 저에게 세계의 깊은 곳에 언어의 추를 내리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충분한 성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의 작은 열매로 받아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김남조 선생님의 따뜻하신 배려와 권택명 시인의 수고로, 이번에 간행되는 이 한 권의 시집을 읽게 되시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이 기회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15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