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는 나의 운명
슬로푸드 국제페스티벌 <아시오 구스토 AsiO Gusto>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살로네 델 구스토 Salone Del Gusto>, 프랑스 투르에서 열리는 <유로 구스토 Euro Gusto>와 함께 세계 3대 슬로푸드 축제 중 하나다. 2013년 남양주에서 열린 이 페스티벌에서 영광스럽게도 순대에 대해 발제하게 되었다. 당시 협회 위원 중 한 분이었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김현숙 교수가 순대에 대한 나의 열정을 알고서 제안한 것이다.
순대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부할 수 있으므로 선뜻 수락했지만, 막상 발표 날이 다가오니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순댓집 아줌마’로서는 다른 이보다 순대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장담할 수 있으나,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40여 개국이 참가하는 국제페스티벌에서 발표할 정도로 전문성을 띠고 있는지는 스스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과 문헌의 힘을 빌려보자는 심정에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식당이 비교적 한가한 날이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순대에 관한 문헌을 뒤졌다. 순대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각국의 음식과 조리법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식당 영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밤에도 책과 인터넷에서 찾은 순대, 내장에 대한 자료들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순대, 그리고 음식 문화에 대해 공부할수록 나의 열정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지역의 식재료, 생활 풍습은 물론 역사와 종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만학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순대 역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었다. 반갑고 또 설렜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제껏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에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준비하기를 몇 개월, 드디어 나는 ‘전통 순대 이야기’라는 주제로 무사히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발표를 통해 그동안 알고 있었던 순대를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의 순대에 대해 알게 된 점이 큰 기쁨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순대를 만들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처음 순대를 만들기 시작했던 때가 떠올랐다. 주말이면 전국에 유명하다는 순댓집을 찾아다녔다. 용인, 속초, 담양, 부산, 제주…. 전국 방방곡곡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어떤 순대를 만들어야 할까 하는 막막함에 순대 기행을 떠났지만 내가 원하는 순대를 찾지는 못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순대에 대한 고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순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던 전통 순대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시의전서 是議全書』에서 현재 순대의 근간인 도야지 슌대를 찾았다. 돼지의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씻어 숙주, 미나리, 데친 무와 다진 배추김치, 두부, 파, 생강, 마늘을 다져 넣고 거기에 깨소금,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와 각색 양념을 섞은 다음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고 부리를 동여 삶은 음식이었다. 나는 『시의전서』의 조리법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인의 입맛에도 맞는 순대를 만들기로 했다. 각색 양념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그 대신 새우젓, 소금, 간장을 추가했다. 또한, 재료 사이에서 결착제 역할을 하는 선지의 비율을 조정해 영양학적인 면도 보강했다.
우리 전통 순대는 다른 나라의 순대에 비해 영양 균형이 잘 잡혀 있어 슬로푸드, 웰빙 식품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선지를 넣지 않은 순대는 물론, 선지가 들어간 순대도 이미 전 세계 각국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어떤 음식보다 친숙하고 재료의 현지화도 쉽다. 앞으로 우리의 전통 순대를 발전시키고 알리기 위한 나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우리의 전통 순대를 보존하면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순대를 만드는 것이 나의 최종 목표다. 갈 길이 멀지만 이번 책을 통해서 그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출간하는 데 있어 감수와 조언을 주신 김철재 교수님과 박정배 작가님, 강지영 선생님, 그리고 순대실록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나가는 데 처음부터 현재까지 계속 함께하고 있는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의 박재현 대표, 순대실록만의 공간적 스토리를 새로운 시각으로 창조해준 JHW이로재의 정효원 소장,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독보적인 순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서우철 실장과 희스토리푸드 식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또 긴 여정에 함께해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출간을 제안해주신 비알미디어 출판사의 김은조 편집장님과 편집과 디자인을 맡아준 신혜진 에디터, 권혁민 디자이너에게도 감사드린다.
제 속을 채워 순대를 만들어주는 돼지 덕분에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순대처럼 따뜻한 추억 하나를 심는다. 함께 응원해준 모두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다.
2017년 2월, 대학로 순대실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