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했다. 혼잣말을 많이 한다. 머리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야만 유리창같이 비치는 곳을 지나갈 수 있다. 호빗족처럼 아침 식사를 세 번 하는 데 푹 빠져 있다.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유머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책에는 세상의 기준과 잣대를 비켜나 있는, 혹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청소년들이 많다. 저마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듣는다.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덜 외롭다고 느끼기를 바라면서.
조현병을 진단받고 평범한 일상을 바라던 소년이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마음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화장실 벽에 쓴 낙서》(미국청소년도서관협회 최고의 청소년 소설), 은둔형 소년이 요가를 배우며 자신을 돌보는 방법과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알아 가는 유쾌한 땀내 성장기 《오늘의 자세: 행운을 부르는 법》을 펴냈고, 10대 소녀가 쓰는 성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오해와 침묵의 벽을 거침없이 허무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2022 북미 청소년 문학상 시빌 어워드(Cyblis Awards) YA 소설 분야 파이널리스트)를 펴냈다.
현재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헌팅턴 해변에서 살고 있다.
“가톨릭 학교에서의 성교육 경험담”
당연한 말이지만 가톨릭 학교는 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제가 처음 접한 성교육은 성(sex)이라는 단어조차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가정생활’이라고 불렸죠. 모든 성행위는 아기를 만들기 위한 시도여야 하며 당연히 (이왕이면 교회에서) 결혼한 상태여야 한다고 전제한 가운데서만 성관계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남녀 각반이었어요. 보건 교사가 우리의 월경과 신체 변화에 관해 설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기본적인 성관계 원리에 대해서는 ‘음경’이라는 용어 대신 ‘남성의 성기’를 사용했어요. 또 생리대, 탐폰, 데오도란트, 기도문이 든 작은 파우치를 나눠 줬죠. 저는 모든 가톨릭 소녀들의 첫 번째 정액 방어선이 바로 ‘기도’라는 걸 그때 알게 됐어요.
두 번째 방어선은 물론 죄책감이었어요. 죄책감은 성관계를 막지 못하지만 성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확실히 막습니다. 너무 궁금한 것처럼 보이거나 질문하는 동안 눈을 마주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저는 빨간 조끼와 남색 주름치마를 내려다보고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비이성애적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구절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으로 따랐습니다. 동성애에 관한 언급은 금기였고, 저는 혼자만의 답 없는 질문들을 하느라 바빠 그 논의에서 얼마나 더 많은 것이 빠져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동성의 성관계에 대해 답을 구하기 어려운 학생이 얼마나 많은지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죠.
어떤 부모들은 교실에서 그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화를 냈습니다.
5학년 말에 중학교 입학생들의 학부모 총회가 있었는데, 한 여학생의 부모가 가정생활 커리큘럼에 너무 화가 나서 딸을 자퇴시켜 버렸죠. 그들은 그 수업이 딸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리라 생각했는지, 성에 대해 자신들의 신념과 더 부합하는 극도로 보수적인 학교에 딸을 등록시켰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매춘업에 종사했다는 점에서 성교육을 제한하는 게 부모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죠.
고등학교 성교육은 일부 공백을 채웠습니다. 적어도 피임에 관한 논의가 있었죠. 올바른 콘돔 착용법도 배웠습니다. 지금도 저는 바나나만 보면 성교육을 겸임한 풋볼 코치가 “치모까지!”라고 외치던 모습이 떠올라요. 콘돔을 끝까지 굴려 씌워야 한다는 뜻이었죠.
수업은 필수 항목을 모두 훑었지만, 질문을 유도하는 데는 또다시 실패했습니다.
이를테면, ‘피임에 실패하면 어떤 선택지가 있나요?’, ‘성관계가 아픈 것이 정상인가요?’, ‘생리한 적 없는데 임신할 수 있나요?’, ‘성욕이 없는 게 정상인가요?’
또 그 풋볼 코치는 우리 반 학생들에게 항문 성교에 대해 “그 부위는 성교를 위한 부위가 아니기 때문에 논의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으므로 여전히 이성애자 전용 수업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코치. 불안해하는 10대들의 난처한 질문을 재치 있게 받아넘겨야 하는 처지치고는 잘 싸우셨어요.
결국 저는 궁금한 것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했는데, 보건실 간호사가 성관계와 피임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정보를 친절하게 설명해 줬고, 진작 질문하지 못해서 얼마나 불필요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걸 왜 지금 알았지?
다들 이미 알고 있나?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질문하기엔 너무 늦었잖아.
너무 늦은 건 아니지만, 진작 알았어야 할 것들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기에, (적어도 거의) 모든 답을 가진 인물에 관해 쓰고 싶었습니다!
몇 년 뒤 저는 10대들이 오르가슴부터 신체 콤플렉스, 피임에 이르기까지 성에 관해 익명으로 질문할 수 있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시스젠더 소녀의 관점으로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를 썼습니다.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여전히 정치적으로 분열돼 있기에 보수적인 동네의 시장 선거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10대 시절 호기심에 기반했으며, 피비의 블로그는 제가 더 어렸을 때 접했으면 좋았을 자원입니다. 왜냐면 아무리 불편하다고 해도 섹스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주제로 남아서는 안 되기 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