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자기소개는 대개 이런 식이었습니다.
'1984년 서울 출생, 청소년기를 중국에서 보냈습니다. 북경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동북아역사재단과 대만 대외 무역발전 협회(TAITRA)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대학원에 진학했고 통·번역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저는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어색하지만 처음으로 진짜 저를 소개해보기로 합니다.
'저는 장녀, 모범생, 낯선 나라의 반죽 좋은 이방인으로 '프로그래밍 된 인간'입니다. 프로그램에 충실한 성장기를 보내며 저는 적응력이 뛰어나고 사교적인 사람인 것처럼 산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저는 결단코, 내향적이고 소심한 사람입니다. 머리가 좋거나 공부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못해도 튀니까 그냥 튀기 싫어 노력할 뿐. 성취의 즐거움은 크죠. 하지만 천성적으로 경쟁을 즐기지는 못합니다. 경쟁이란 제게 어떤 동기부여나 쾌감이 아닌 커다란 스트레스에요. 때문에 특히 대학생활 내내 울적했습니다. 울적함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남들은 툭하면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고 싶다던데, 저는 보내준다 해도 싫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북적이는 모임에 참가하고 나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요. 흔히들 제가 진지하다고 생각하지만 전 매일매일 경계 없는 상상을 수십 개씩 하는 엉뚱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척 중요한 건데, 저는 사진을 찍을 때와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 풍경 속에 고양이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어요. 물론 프로그래밍 된 부분도 저의 일부겠죠. 하지만 프로그램은 결국 오류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난 후, 한 번쯤은, 날것의 저를 소개해보고 싶었어요. 이상 '솔직한' 자기소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