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일렉트릭(GE)4000퍼센트 성장 신화.
세계 기업 역사상 최고액 퇴직금(4500억 원) 전 세계 CEO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CEO.
1935년 매사추세츠 주 피바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심하게 말을 더듬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네가 말을 더듬는 것은 머리 회전이 너무 빨라서 혀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격려한 현명한 어머니 덕분에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잭 웰치는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스승을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어머니라고 말한다.
1957년 매사추세츠 주립 대학교 화공학과를 졸업했고, 1960년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에서 화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GE에 입사했다. 여러 사업 본부를 거치며 맡은 조직마다 특유의 경영 방식으로 큰 성과를 올려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1973년 기획전략실 실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하며 GE 내 거물급 인사로 떠올랐고 1979년에는 GE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81년 당시 만 45세의 나이로 100년 GE 역사상 최연소 CEO에 임명되었다.
당시 GE의 경영 상태는 매우 양호했으나 잭 웰치는 솔직함과 속도, 단순함과 자신감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시장의 변화를 예견하고 한발 빠르게 개혁을 단행했다.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는 모토 아래 세계 시장 1위 혹은 2위가 될 수 없는 사업을 모두 폐쇄하거나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170개에 이르는 사업부 중 110개가 사라졌고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정리하여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잭 웰치는 자신의 불가피한 선택을 부정적으로만 보이게 한다는 이유로 이 별명을 극도로 싫어한다.
2001년 GE 회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30년 동안 1700여 건에 달하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엄격한 품질 관리 시스템인 식스 시그마를 비롯해, 워크 아웃, 변화 가속화 운동, 벽 없는 조직, 세계화, e비즈니스 등의 혁신 경영 기법을 창안하거나 도입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기업이 잭 웰치의 혁신 기법을 따라했다.
취임 당시 GE는 40만 명의 직원이 250억 달러(약 27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나 퇴임할 즈음에는 31만 명의 직원으로 5배가 넘는 1300억 달러(140조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시가 총액 역시 120억 달러(약 13조 원)에서 4500억 달러(약 500조 원)로 서른여덟 배가량 증가했다. 그가 GE를 떠나며 받은 퇴직금 4억 1700만 달러(약 4500억 원)는 기업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이다.
2000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지난 100년 간 최고의 경영자 1위’에 올랐고, 2001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에 선정되었다. 2005년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대가’에도 이름을 올렸다.
GE를 떠난 이후 그는 사모 펀드 회사인 ‘클레이턴 더빌리어 앤드 라이스’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75개 기업의 경영에 관여했고, 전 세계 100여 개국에 150개 브랜드를 소유한 미디어 회사 IAC의 자문으로도 활동했다. 2010년 스트레이어 대학교에 ‘잭 웰치 경영 연구소’를 설립해 10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경영학 석사 과정(MBA)을 운영했다. 또한 전 세계 수많은 포럼과 세미나, 강연회에 참석해 100만 명 이상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한국 기업에도 관심이 많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현대그릅 정주영 전 회장과 합작 법인 설립 협상 과정에서 팔씨름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잭 월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 <위대한 승리> 등 그의 저서는 전 세계에서 6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20년 3월 1일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