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첫 밤이었다.
어둠 속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응답처럼
누군가 먼 곳에서 불을 켰고
문득, 만난 적 없는 그이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난 적 없지만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어쩌면 미래에 있을 사람의 언어를
나는 받아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마주할 때
그 감정은 내가 모르는 그이에게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시를 쓰며, 알 것 같다.
우리가 투명한 각주로 된 발을 단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서로를 움직이며 걸어가고 있음을.
보이지 않는 그 힘으로 이 세계가 나아가고 있음을.
2021년 제주에서 봄을 지나
장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