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미학과를 졸업했고, 1969년『시인』지에「황톳길」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 정치풍자 담시「오적」을 발표하며 문단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해 첫 옥고를 치른 후, ‘오적 필화 사건’‘비어 필화 사건’ ‘민청학련 사건’‘고행…1974 필화 사건’등으로 8년간의 투옥, 사형선고 등의 고초를 겪었다.
1980년대 이후 생명사상을 제창하고 생명운동을 추진했으며, 우리의 고대사상과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문명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1975년 제3세계 노벨상이라 불리는‘로터스 특별상’을, 1981년 세계시인대회에서‘위대한 시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황토』,『타는 목마름으로』,『애린』,『별밭을 우러르며』,『중심의 괴로움』,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밥』,『남녘땅 뱃노래』,『살림』,『사상기행』,자서전인 『흰 그늘의 길 1.2.3』등이 있다. 감옥에서 얻은 지병으로 투병 중 2022년 5월 8일 타계했다.
이 책, (당시엔 )가 출간된 것이 벌써 20여 년 전이다. 20여 년 전의 옛 책을 다시 붙들고 있자니 감회가 기묘하다. 우선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제목이다. 나의 첫 제목은 지금과 같은 ‘남조선(南朝鮮)’이었는데 주변의 여러 친구들이 자꾸 말려서 ‘남녘땅’으로 바꾼 것이다.
왜? 내가 긴 감옥살이에서 막 출옥한 뒤였고 또 세상이 아직도 ‘남조선’이란 말에 익숙하지 않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바로 그놈의 ‘남조선’이란 말 한마디 시방 막 세계적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간태합덕(艮兌合德)’이라는 정역(正易)의 한 화두(한미 연합을 뜻함)를 가지고 워싱턴 강연차 그곳에 갔을 때 한 전직 주한 특파 기자였던 지식인이 가라사대, “미국인은 한국이 지구의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지는 모른다”고 하던 그 말 한마디가 아직도 내 뇌리에 마치 더러운 똥 찌꺼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판에 ‘남조선’이라! ‘South Korea’라!
나의 대학 선배인 김준길 선생이 필리핀의 마닐라 대학에서 쓴 한 논문 「South Korea」가 뉴욕에서 큰 상을 받았다. 이 서문과 함께 그 수상소감을 번역해서 끝에 싣는다.
그 선배 왈, “그 글의 시작은 바로 자네의 책 야!”
이렇게 되었다.
김치, 비빔밥, ‘K-pop’ 때문인가? 아마도 월가의 금융쇼크 이후 세계문명의 중심이 서쪽(대서양)에서 동쪽(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음 때문인가? 더군다나 바로 지금 이 ‘개벽’의 때에, 이 ‘화엄’과 동서 융합, 그리고 ‘네오-르네상스’의 한류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는 바로 이때에……?
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아내가 유일하게 평가하는 책이 바로 이 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20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붙들고 있자니 아무래도 기이하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거의 다 그대로 두고 지나간다. 그쪽이 훨씬 편해서다.
편한 것!
그것이 바로 ‘South Korea’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