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조德祖, 호는 해암海巖이다. 조부는 이조판서 유명현柳命賢,
부친은 성균진사 유뢰柳耒, 모친은 사천목씨泗川睦氏 목임일睦林一의 따님이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연루되어 해남海南에 유배 가는 부친을 따라갔다가 이듬해에
유배지에서 부친상을 당했고, 이인좌의 난 4년 뒤에 한양을 떠나 안산安山으로 낙향
했다. 19세부터 21세까지 한양을 오가며 관직 진출을 꿈꾸었으나 이후 벼슬을 단념
하고 안산에 거주하며 독서와 시문 창작에 전념했다. 성호의 제자로 안산 일대의 남
인南人, 소북小北 문인들과 교유했다. 문집으로 해암고海巖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