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비노에서 궁정 화가인 산티의 아들로 출생하여 아버지로부터 그림의 기초적인 것을 배웠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비테에게서 배우고, 1500년 페루지노에게서 감미로운 화풍을 배웠다. 1504-1508년 피렌체에 거주하면서 그 지방의 사실적인 회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바르톨로메오와 친하게 사귀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작품에 의해 그들의 화면 구성, 명암법을 배우는 동시에 동적 및 지적인 요소를 흡수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수립하였다. 이곳에서는 "성 모자 상"을 비롯하여 많은 초상화를 그렸는데, "작은 의자의 성모" "자화상" 등은 이때의 작품이다.
1508년 로마에 가서 브라만테의 추천으로 교황 율리오 2세 밑에서, 바티칸 궁전의 모자이크 풍의 천장화를 그린 후, 그 둘레의 벽에 "성체의 논의" "아테네 학당" "삼덕상"을 그렸다.
브라만테 사후, 그의 뒤를 이어 성 베드로 성당 조명에도 관계하였으며, 로마 시 고적 발굴 및 그 부흥 계획 주임이 되어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으나, 3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는 이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많은 걸작품을 남겼으며,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양식을 완성하였다. 대표작으로 "산시스토의 성모" "아테네 학당" "부활" 등 많은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