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자 후기
역자가 수학을 전공하기는 하였으나 기실 감히 수학을 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도서출판 승산과 인연이 닿았고, 좋은 수학 관련 서적을 출판하겠다는 의지를 꾸준히 실천하고 계신 사장님은 수학과를 졸업하고 번역을 하고 있다는 것만 보시고 자신 없어 하는 역자에게 그러면 공부를 하라는 달초를 하시며 무거운 짐을 지워주셨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타고난 호기심으로 콕세터의 삶을, 그리고 그 주변을 구석구석 뒤져보았고, 독자의 눈높이에서 질문을 던지고 또 답을 정리해냈다. 저자는 콕세터를 부르바키 집단과 대비시켜 극적인 효과를 냄과 동시에 현대수학의 흐름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콕세터의 사상이 어떠한 것인지, 따라서 반대로 부르바키 집단의 주장은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본능 덕이었는지, 저자는 수학의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현대수학의 중요한 쟁점 하나를 또렷하게 부각시켜낸 것이다.
보는 그대로의 세상은 참으로 무료하다. 그러나 종종,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예술가가 그러한 사람들이고, 그리고 대개는 가장 지루한 학문의 하나로 여겨지는 수학을 하는 사람들 또한 거기에 속한다. 오늘날 수학은 ‘수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패턴에 대한 학문’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얻고 있다. 무작위로 보이는 현상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 그것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일 터이고,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수학은 예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책에서도 콕세터의 연구가 예술가들에게 미쳤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꾸로 예술작품에서 콕세터가 영감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콕세터는 위대한 수학자인 것만큼이나 위대한 예술가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이미 낡아빠진 것으로 여겨졌던, 직관과 시각적인 것을 중시하는 방법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거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은 콕세터가 수학을 대하는 태도는 수학을 지루한 계산으로, 기계적인 증명으로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충격적일 만큼 참신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바로 그래서 그를 둘러싸고 전 세계적인 팬덤이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추측건대 저자도 그런 팬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콕세터에 대한 기사로 내셔널 매거진 어워드National magazine Award를 수상하였다.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는 콕세터와의 만남을 통해 저자는 그에게 매력을 느꼈고, 그래서 결코 쉽지 않았을 방대한 작업을 시작하고 또 마쳐낸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콕세터에게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모습은 제자들이 가슴 속에 모실만한 스승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콕세터의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맑게 드러내주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참스승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각박한 세상 탓일까, 도리어 참스승이 스승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마음에 담아둔 스승 콕세터의 모습이 더욱 빛나 보인다. 더구나 가장 수학자다운, 수학적 삶을 살아낸 그이지만 거기에 갇혀 살지 않고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거창하게 무슨 무슨 주의를 신봉해서였다기보다는, 그의 순수한 단순함이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세상의 모습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한 수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들을 보면 수학자를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로 이상화하거나, 아니면 우리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사는 기인처럼 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 그런 면모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콕세터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그런 선입견의 벽을 허물려고 애썼다. 저자의 노력이 수학자를, 그리고 수학을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역자가 거기에 일조한 것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