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나 나무 뒤로 숨어서
중간에 산문집 두 권이 있었지만, 첫 시집인 「꿈은 꿈대로」가 나간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시에서 시작한 사람으로 외출이 너무 길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모인 시들을 털어 빛 속에 내놓아 본다.
첫 시집이 나간 후, 내가 드리운 커튼이 너무 얇고 투명했던 것 같아 후회를 많이 했다. 노출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이제는 나를 뒤로 물리고, 조금 멀리서 보자고 다짐을 했다. 될 수 있으면 나를 버리자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우선 꽃이나 풀이나 나무의 뒤로 숨기로 했다. 내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내 소리는 들리지 않게 그들을 앞세우기로 했다. 그건 그들의 모습이고 그들의 소리이지 내 모습이 아니고 내 소리가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째깍째깍 끝나는 단편이 아니고, 단 한 편의 장편인지라 前歷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함박눈처럼 허허 웃으며 털어버리고 싶어도 싸락눈처럼 응어리져서 풀리지 않는 이것들은 아마도 끝까지 품고 가야할 것 같다.
또 한 번 강산이 변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20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