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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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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은근히 흥미로운 한일 고대사>

오영환

전 주오사카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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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은근히 흥미로운 한일 고대사> - 2020년 11월  더보기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사는 우선 이를 기록한 문헌이 많지 않고 일본의 역사서는 날조되고 심하게 왜곡, 윤색된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특히 일본의 학자. 연구자에 의해 제기된 수많은 주장과 설說이 오히려 역사의 진상을 흐리고 애매하게 하는 미로迷路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지난至難의 과제가 되어 버린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일 고대사의 진실은 그 핵심을 알고 보면 의외로 심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이는 바로 일본의 정사正史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백제 왕자의 대부분이 후국侯國이었던 왜국에 후왕侯王으로 파견되었던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그 핵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서기는 백제 왕자들의 도래 사실만을 간략하게 언급하면서 이들이 인질, 조공, 봉사 등의 목적으로 온 것이라고 하고 있으나 백제왕자들이 왜왕으로서 후국을 다스리기 위해 파견된 사실을 읽어내는 것이야 말로 한일 고대사 복원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한일 고대사의 이해를 위해 열쇠를 쥔 인물은 바로 백제왕자인 곤지昆支와 덴지天智라는 두 명의 백제 왕자입니다. 곤지는 일본서기의 유랴쿠雄略 5년(461년) 부왕인 백제 개로왕의 명을 받아 일본열도로 건너가 가와치河內-지금의 오사카 남부-에 백제의 후국을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분지에 있던 가야계의 미와三輪 왕국을 통합하여 6세기 초 야마토大和 왕조를 세우는 토대를 구축하는 왜왕 무武이며, 덴지는 645년 당시 실권자였던 소가씨족을 멸하여 왕권을 회복하고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새로운 독립국가 일본국日本國을 탄생시킨 왕으로 백제 의자왕의 아들 교기翹岐입니다. 즉 곤지는 일본의 고대국가라 할 수 있는 야마토 왕조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수 있고 덴지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국을 세운 왕이었다는 점에서 이 두 인물을 한일 고대사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일왕가의 혈통이란 시각에서 보면 781년 1세기만에 완전한 백제 왕통을 다시 일으킴으로써 현재의 일본 왕실의 시조가 된 간무桓武 천황 역시 한일 고대사의 또 한명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의 정사인 일본서기는 곤지의 경우는 도래 사실만을 전하고 덴지, 간무의 경우는 백제 왕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는데 이들의 출자와 백제 왕실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검증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주제이기도 합니다. 일본서기의 가장 대표적인 날조기사는 누가 보아도 진구神功 왕후의 소위 ‘삼한정벌三韓征伐’관련기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화같이 허무맹랑하게 보이는 가공인물 진구왕후의 행적을 추적하고 음미하다보면 심하게 왜곡, 윤색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일 고대사의 진실 특히 고대 백제가 왜국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읽어 낼 수 있는 실마리가 암시되어 있다는 점을 감지하게 됩니다. 이는 백제인의 후손이었을 일본서기 편찬자가 왜곡된 역사를 기록한 죄책감에서 남겨놓은 의도된 기술일 수도 있겠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합니다. 일본서기는 결국 곤지왕자가 주도한 백제 왕통에 의한 고대 일본국가와 일본 왕실의 성립이라는 진상을 은폐하기 위하여 실재하지 않은 진구神功 왕후와 오진?神왕을 창작하여 역사를 날조하고 토착세력에 의한 왕통의 만세일계를 창출해 내었던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백제가 멸망하자 야마토 조정은 황조신皇祖神 아마테라스대신天照大神을 창작하여 대내적으로는 그의 후손인 천황의 일본통치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대외적으로는 백제의 후국이었던 왜국을 실제의 역사와는 정반대로 한반도의 국가들을 번국蕃國-신하의 나라-으로 둔 천황국天皇國으로 만들기 위한 근거로 진구왕후의 소위 ‘삼한정벌’기사를 날조하였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역사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만든 일본서기의 기술이 오히려 고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인데 특히 일본서기의 암시적인 기술과 그 후 우연히 발견된 몇 개의 금석문金石文을 종합적으로 해석하게 되면서 일본서기가 감추고자 했던 역사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중요한 금석문으로는 광개토왕 비문廣開土王碑文, 칠지도七支刀 명문銘文, 스다하치만隅田八幡 인물화상경 명문, 무령왕릉 묘지석 명문 등을 들 수 있는데 앞으로 금석문들이 추가적으로 발견되면 역사의 진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고대 백제 등 한반도 국가의 왕실과 왜 왕실의 혈연관계가 드러나는 것을 막는 것이 일본 정부가 왕릉의 발굴을 한사코 금지하고 있는 본심이고 이를 위해서는 결국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는 추가적인 금석문이나 유물의 발견을 저지해야만 하는 것임에 비추어 보면 일본 정부가 가까운 장래에 능묘로 지정된 고분의 발굴조사를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 * * * 현재의 한일관계는 1910년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1945년 종식된 후 20년만인 1965년 한일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正常化한 이래 최악의 상태라는 말을 요즈음 주변에서 많이 듣습니다. 오랫동안 한일관계를 지켜보아 온 필자로서도 이러한 상황인식에 동감이며 앞으로의 양국관계에 대해 크게 걱정이 됩니다. 양국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양국의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목적에서 언론까지 동원하여 특히 양국의 과거사와 관련된 국민감정을 교묘하게 선동하고 있는 것이 한 몫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권과 언론의 자세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양국관계 개선의 필요조건이라고 하겠지만 현재의 냉각된 양국관계의 실상을 보면 과연 양국의 국민과 정권의 지도층에 과연 양국의 관계개선을 향한 의지가 있는지 그 자체가 의문시됩니다. 이처럼 양국관계에 깊은 골이 파여져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과거사過去事’와 관련해서 양국의 국민사이에 내재하고 있는 뿌리 깊은 부정적인 정서-불신감 또는 혐오감-가 심각한 수준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과거사’ 하면 보통은 일제강점과 이와 관련된 문제들을 떠올립니다만 양국의 고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의 차이가 또한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의 주요한 배경의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현재 양국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이러한 역사와 관련된 갈등을 완화.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 양국 국민이 갖고 있는 역사인식과 태도의 토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이는 한일 고대사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일제강점의 피해자인 우리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세계보편적인 시각으로 보아 도저히 유례없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자세-진솔한 사과나 반성은 하지 않고 오히려 성을 내고 혐한으로 달려가는 태도-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처럼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인의 심리와 태도에 대하여는 그 근저에 일본인들이 내심 자기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가야와 백제가 현재 한국인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신라에 의해 멸망한 데서 받은 충격과 원망이 잠재의식이 되어 분출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 한국인과 일본인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사실을 숨기려는 잠재의식이 일본인에게는 한국인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심리를 유발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두 의견 모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더하여 필자는 백제가 멸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8세기 초에 편찬된 일본의 정사인 일본서기가 제시한 일본역사에 대한 편찬지침-국가가 정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그 후 역사인식에 대한 일본인의 사고의 틀을 결정하였고 일본인의 운신의 폭을 극도로 제한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날조되고 왜곡된 일본서기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충실하게 따르다보니 일본의 정부나 역사학계 모두 역사의 진실을 계속 은폐, 왜곡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게 되고 이는 결국은 현재 일본 정부나 국민들이 보여주는 과거사문제에 대한 특이한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본국과 다름없던 백제의 멸망으로 한반도에서 의지할 땅을 잃은 당시 왜국의 왕을 포함한 지배층은 결국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백제와는 결별하고 일본열도에서 새로운 독립된 나라로 출발을 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새로운 통치 이념을 정하고 이를 일본서기의 편찬지침-일종의 역사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천황제天皇制국가라는 이념입니다. 일본서기가 천명하고 있는 핵심내용을 보면, 자국민에 대해서는 ‘천신天神의 자손’인 천황가의 일본통치의 당위성과 만세일계萬世一系를 내세운 것이라 하겠는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 3개항으로 요약되는 대외용으로서의 함의가 강한 내용들이라 하겠습니다. 3개항의 통치이념을 보면, 첫째는 일본의 왕가와 귀족들의 출신은 백제나 가야 등 한반도의 국가와는 전혀 무관한 열도 토착인土着人 출신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진구神功 왕후가 4세기 신라 등 삼한을 복속시켜 내관가內官家를 설치하여 그곳의 국가들을 지배권 내에 두었다고 일본서기가 기록하고 있으니 신라는 물론 백제, 고구려 등 한반도국가는 모두 일본의 신하의 나라 즉 번국蕃國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일본의 고대 왕국은 한반도 남부국가들보다 더 오래전에 성립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수많은 증거에 비추어 보면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그 정반대가 역사적 사실에 가까우며, 실제로 많은 경우 일본서기의 기술을 거꾸로 해석하면 역사의 진실이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서기가 제시한 이러한 사실史實에 반하는 일본역사의 가이드라인은 그 후 일본의 정권과 보수적인 학자들에게 바이블처럼 신봉되어 왔고 학교의 역사교육을 통해 일본국민들에게 철저하게 주입되어 왔는데,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계기로 일부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학자나 연구자들에 의해 진구 왕후가 가공의 인물이라는 등 일본서기의 일부 내용에 대해 이의가 제기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일본서기에 입각하여 일본인들에게 강요된 역사인식은 큰 틀에서는 일본국민들의 유전인자가 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온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앞에서 언급된 일본서기의 편찬지침 중에서 두 번째 항인 고대 왜국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고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것은 완전한 역사의 날조임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친한적이며 양심적으로 보이는 소수의 일본학자들조차도 진구왕후의 실재성이나 한반도 지배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4세기 당시 왜국이 한반도에 진출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대체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일본의 각 급 학교에서도 이러한 취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러한 왜곡된 역사교육이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근거 없는 우월감을 조장하여 양국사이의 과거사문제의 해결은 물론 두 나라의 우호관계 발전에 근본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일본서기에서 비롯된 오도된 일본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극명한 사례는 일본 정부의 모든 능묘陵墓-왕과 왕후, 왕의 자녀의 무덤-에 대한 비공개 및 발굴조사 금지 조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매우 궁색한 이유를 들어 능묘에 대한 접근조차 금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를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는 것은 발굴조사를 통해 한일 고대사의 진실을 분명하게 증언하는 묘지석이나 부장품이 발견되어 일본서기 이래 쌓아 온 허구의 역사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진짜 이유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들 알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처럼 왕릉의 발굴조사자체를 금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듣지 못한 비정상적인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하루속히 왕릉 등 능묘에 대한 발굴조사가 허용되어 고대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처럼 한일 고대사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일제강점과 관련된 과거사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과도 관련된 것으로 향후 미래의 양국관계의 향방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따라서 한일 고대사의 실상을 밝혀서 한일 양국인들 모두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과제라고 봅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한일 고대사의 실상을 복원하기 위한 연구가 양국의 사학계와 재야학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상당히 시사적인 연구결과가 소개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필자는 운 좋게 2007년부터 수년간 오사카大阪에 근무하면서 오사카와 나라奈良, 교토京都 등 긴키近畿지역의 한반도관련 유적, 유물을 둘러볼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한일 고대사의 중심무대에 있었던 인연으로 한일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나름대로 그 진상을 추구해보려는 의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일 고대사에 관해 많은 분량의 기사를 싣고 있는 일본서기를 읽어 보고, 두 나라에서 출판된 문헌을 대하면서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과 한국의 열정적인 재야사가들의 참신한 저술에서 많은 시사를 받았습니다. 일본서기는 우리에게는 한일 고대사를 조작. 날조한 역사왜곡의 원조로 여겨지지만 우리의 고대사에 관해 우리의 역사서가 전하지 않는 많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서 우리의 고대사 연구에도 참고가 됩니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기술의 행간 속에는 잘 만 해독하면 읽을 수 있는 진실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예로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 수 있으나 특히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후왕으로서 야마토로 건너간 대부분의 백제왕자들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상황과 일본서기의 기술방식 그리고 다른 관련 문헌 등을 심도 있게 종합하여 보면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일본서기의 행간을 읽고 한일 고대사의 줄거리를 세우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선학들이 이루어 낸 연구결과 특히 금석문金石文의 합리적인 해석, 고분 및 그 부장품에 대한 비교분석, 중국 및 한국 문헌과의 비교. 검토, 과학적 연구결과 등에 커다란 도움을 받았으며 이러한 기존의 연구결과나 문헌사료 또는 고고학적 사료만으로는 도저히 그려내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합리적인 추론과 상상력의 힘을 빌려서 나름대로 한일 고대사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학문적으로 심도 있는 연구결과물이라기보다는 고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사 전반을 가능한 한 시대 순으로 묘사하여 되도록이면 알기 쉽게 기술한 일종의 통사通史로서 해설서와 비슷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한일 고대사는 사안의 성격상 관련 사료가 부족하고 해석상의 차이 등으로 인해 주요사안이나 인물에 대해 매우 다양한 다른 설說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러한 설說들의 전쟁을 매듭짓고 싶다는 마음에서 되도록이면 하나의 통일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지금의 단계에서 최종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의 설들을 병렬적으로 소개한 경우도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한일 고대사에 대해 관심은 많지만 설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실상을 이해가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알기 쉽게 한일 고대사의 전반적인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는 일념에서 이 책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모쪼록 한일 고대사의 진실에 대해 갖고 계셨던 의문이나 궁금증의 많은 부분이 이 책을 통하여 해소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나아가 이 책이 과거사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심리와 태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 한일 양국사이의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향한 우리의 대응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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