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이자 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1804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태어났다. 17세기 신대륙 개척 시대에 건너온 청교도 가문의 후손으로, 그의 선조 중에는 세일럼 마녀재판을 주도한 판사가 있었다. 이로 인한 가문의 비극적 역사와 죄의식은 호손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보든 대학 시절 시인 헨리 롱펠로, 후일 미국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졸업 후에는 12년간 고향집에서 은거하며 치열한 독서와 습작 생활을 이어갔다. 1837년 첫 단편집 『두 번 들은 이야기』로 에드거 앨런 포의 찬사를 받았다. 1839년부터 보스턴 세관 검사관으로 근무했고, 1842년 결혼 후 콩코드의 ‘낡은 목사관’에 머물며 에머슨, 소로 등 당대 지성인들과 교류했다. 1846년에는 단편집 『낡은 목사관의 이끼』를 발표했다. 같은 해에 세일럼 세관 검사감독관으로 임명되었으나 1849년에 정권이 바뀌며 강제로 해임되었다.
1850년, 46세에 발표한 『주홍글씨』는 그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이 유럽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음을 선언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허먼 멜빌은 호손의 문학적 깊이에 경의를 표하며 『모비 딕』을 그에게 헌정했다.
이후 『일곱 박공의 집』(1851), 『블라이드데일 로맨스』(1852), 『대리석 목신상』(1860) 등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둠과 빛을 탐구했다.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고통받다가 1864년, 오랜 벗 피어스와의 여행 중 플리머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호손은 청교도적 도덕주의와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결합해 인간 영혼의 비극적 진실을 파고든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죄와 속죄, 은밀한 죄책감의 심리적 작용을 다룬 그의 작품들은 현대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블라이드 데일(Blithe+dale, 행복 골짜기)'이란 말에서 어렴풋이 록스버리의 브룩 농장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 농장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일단의 사회주의자들이 정착하여 일궈놓았던 곳이다. 이 작품을 쓸 당시 그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한때 운 좋게 이 공동체와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나로서는, 다음에 이어지는 상상 속의 이야기에 보다 더 생생한 현실감을 불어넣기 위해 실제의 기억을 간혹 떠올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인물들만큼이나 농장 조직 그 자체도 허구의 산물임을 독자들에게 분명히 밝히고 싶다.
브룩 농장과 관련된 이야기는 부수적인 것일 뿐, 로맨스를 창작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또한 사회주의 이론을 설명하려거나 사회주의를 옹호 또는 비판하여 어떤 결론을 끌어낼 의도도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