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플레이셔는 ‘판타스틱’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 중의 하나다. 판타스틱 장르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느와르, 스릴러, 전쟁 영화 등 거의 모든 영화 장르를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플레이셔의 영화적 감수성과 적극적인 모험 정신은 특정한 경계나 작가적 취향을 넘어선다.
‘베티 붑’과 ‘뽀빠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플레이셔 스튜디오의 설립자인 맥스 플레이셔의 아들인 리처드 플레이셔는, 아버지가 애니메이터였기에 어려서부터 영화와 가까운 삶을 보냈다. 그의 경력 역시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시작했는데 실사영화 데뷔는 1942년 RKO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그가 처음 명성을 얻게 된 작품은 놀랍게도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플레이셔는 몇 편의 느와르 영화들을 발표한다. 단편과 다큐멘터리 위주로 작업하던 플레이셔는 1946년 필름느와르 <보디가드>로 첫 번째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상상력과 스튜디오 프로덕션에서 익힌 그의 장인적 재능은 1954년 디즈니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1954년 디즈니에서 <해저 2만리>를 연출하면서 리처드 플레셔는 대작영화에 능한 감독으로 알려졌고 <바디 캡슐>(1966) <코난2-디스트로이어>(1984)처럼 특수효과가 필요한 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했다.
디즈니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짐짓 어린 관객을 타겟으로 한 어드벤처 장르로 보이기도 하지만, 플레이셔의 환상 세계는 겹겹으로 놓여진 다층적인 이야기와 의미들로 빼곡 차 있다. <도라!도라!도라!>나 <강박충동>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플레이셔의 판타지에는 인간과 그를 둘러싼 주변이 맺고 있는 관계와 그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감정들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의 영화의 진면목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은 <강박충동> <보스턴 교살자> 등과 같은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다큐멘터리 경력을 살린 연출은 서구 사회의 도덕적 불안과 공포의 그늘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이다. 2006년 수면을 취하던 중 건강이 악화되어 89세 나이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