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당시 17세였던 재일한인 가와사키 에이코는 귀국선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일본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곳이었다. 조총련은 북한을 가리켜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했다. 일본에서의 차별과 가난을 피해 무상의료, 무상주택, 무상교육을 제공한다는 말만 믿고 북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는 오직 비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배가 거센 파도에 휩쓸리는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300년 정도 뒤돌아 가버린 게 아닌가?"
(저자 가와사키 에이코)
저자는 북한에 도착한 첫날부터 가난과 억압을 느꼈다. 그 옛날 아프리카가 '암흑의 대륙'이라 불린 적이 있었는데, 북한에 도착한 그녀는 '이곳은 암흑의 대륙보다도 더 무서운 곳'임을 깨달았다.
"북한은 조선 봉건사회로부터 직접 일제식민지를 거쳐,
소련의 의도에 따라 김일성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한번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맛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구조를 인간사회의 상식으로 당연시했고,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세습이 이루어져도 그 또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자 가와사키 에이코)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2003년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북한을 탈출해서 일본으로 향했다. 남한이 아니라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조총련과 함께 북송사업을 주도했던 일본 정부를 향해서 잘못을 따지기 위함이었다.
2014년 2월 UN조사위원회(COI)는 식량위기와 정치범수용소에서의 고문과 학대, 인접국 국민들의 납치 등 북한의 인권침해를 '반인륜 범죄'라고 사상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책임자에 대한 제재와 국제형사사법체계에 회부할 것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은 이러한 결의안 채택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3명의 탈북자를 극비리에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 초대해 정보의 진위 등을 철저히 조사했다. 가와사키씨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북송사건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고 폐쇄적인 비인권국가 북한 체제가 변화하는 날까지 저자는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북한 사회의 가혹한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