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교외 에반스톤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이 찰스 카터였는데, 부모의 이혼 뒤 새아버지 체스터 헤스톤의 이름과 어머니의 성 찰톤을 따서 이름을 찰톤 헤스톤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941년 명문 노스웨스턴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뒤 43년 미육군에 입대해 복무했다. 1944년에 대학 동창인 리디아 클라크와 결혼, 슬하에 프레이저와 홀리 앤은 두고 있다.
1941년 영화에 데뷔. 2차 대전 참전 후 모델 활동을 하다 1947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해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1950년 <줄리어스 시저>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세실 B. 드밀'감독의 52년도 작품 <지상 최대의 쇼>로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배우로 급성장했고, 1956년 영화 <십계>에서 모세역으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 1959년 <벤허>로 32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십계>와 <벤허> 등 성서를 기초로 제작된 스펙터클한 작품과 SF의 고전 <혹성탈출> 등에 출연하면서 5,6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1973년에는 영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자신이 직접 연출해내며, 연극 데뷔 작품을 영화화하기도 했던 그는 120편이 넘는 할리우드 영화에 꾸준히 출연해 왔다. 또 90년대에도 <트루 라이즈>와 <아마겟돈> 등의 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미배우조합(SAG) 회장과 미국영화연구소(AFI) 이사장 역을 역임하였으며, 1998부터 미국총기협회(NRA) 회장을 3차례 연임하는 등 정치적인 활동도 펼쳤다. 2002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아왔던 그는 2008년 4월 5일 미국 베버리힐스 자택에서 부인 리디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