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소설을 썼다. 심지어 그 소설들을 모아 소설집을 냈다. 내 소설을 읽은 혹자는 소설이 재미도 없고 어렵다면서 말랑한 이야기를 쓰라고 했다. 그 조언을 듣고도 여전히 재미있는 소설과는 먼 재미없는 소설을 썼다. 그래야만 했다. 내 글에 걸려 올라온 모든 것들이 그 순간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그런 이들을 호명하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졌다. 그런 의무감과 중압감을 가지고 쓰는 글이 고통스러웠지만 포기하지 못 했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포기하지 못 하면서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을 이겨내는 일이었다.
한동안, 아니 꽤 오랜 시간 소설을 쓰지 못 했다.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난의 시대였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는 것이 의무라 여겼던 지난 글쓰기와 달리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그 욕망은 이전에 나의 세계에 없던 다른 경험과 감정과 균열이 만들어낸 결과였으며 강렬하게 이끌렸다. 그래서 시도를 했다. 또 시도했다. 나의 세계관이 바뀐 이전에는 써보지 못한 주제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싶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이전과 이후를 이어줄 수 있는 의식이 필요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전에는 써 본 적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닿기 위해서는 이전의 소설들을 위무하고 보내주는 통과의례가 있어야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마다 자신의 소설을 세상으로 내보이는 목적이 다르겠지만 내 목적은 분명했다.
이전에 썼던 소설을 잘 떠나보내는 것.
치열하게 글을 썼던 그 순간들과 함께 나의 소설을 위무慰撫하며 내 인생 첫 소설집을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의식이다. 치열했던 그 시기를 정리하고 위무를 마친 후에 찾아올 새로운 글쓰기를 위한 의식. 의식은 또 다른 시도를 위한 떠나보내기 일 뿐, 그 의식을 치렀다고 혹자가 조언한 대로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재미라는 것이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므로 나와 혹자가 느끼는 재미는 다를 것이다. 따라서 내가 선택한 의식 이후에 쓰게 될 소설이 여전히 혹자에게 재미없는 소설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취하기 위한 의식을 행한 이후에는 이전과 다른 글쓰기가 될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주에 티끌 같은 존재로 떠돌다 누군가를 알아보고 알아채는 거대한 일.
거대한 일을 감당하고 감당해 준 모든 티끌들.
티끌인 내 존재를 그대로 인정해 준 형규와 태호, 진호, 진경.
티끌로 전전하며 유랑하다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한 말… 사랑한다.
재미없는 소설을 읽고 표사表辭를 써주신 김이정 선생님과 교정을 봐주신 문성희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두 분 모두 시간을 다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 마음을 내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잘 떠나보냈다. 모든 순간이 마음 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