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머무를 때 집 근처에 있는 ‘세월교’라는 다리를 좋아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꼭 그곳으로 가서 다리 아래 흐르는 물소리를 멍하니 듣곤 했다. 어느 날 문득 세월교에 낡은 중고차를 대놓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낡은 노트북으로 시작한 첫 문장은 “소녀는 명랑했다”였다. 아직 주인공의 이름도 없었을 때였다. 그땐 이 이야기가 탐정소설이 될지도 몰랐고 “명랑”으로 시작했으니 슬픈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실종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계획만 있었다. 나는 아직 얼마나 모르고 있는 걸까. 소설을 쓰면서 가장 재미있는 건 몰랐던 내가 하나씩 드러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회의와 한숨이 끊임없이 날 괴롭히지만 알게 될 때의 쾌감 때문에 계속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