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독립투사와 친일세력 중에 박상진은 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투사가 되고, 장승원은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기회로 삼아 친일부호가 된다. 하지만 그 악연은 그 후손들에게까지 대물림되는데 그 이야기가 마치 오월지간(吳越之間,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오나라와 월나라의 숙명적인 운명을 일컫는 말로 대를 이은 원수지간이란 뜻)에 견줄 만한 것이리라.
보장된 부(富) 평양 판사직을 내던지고 자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독립투사의 길을 선택한 박상진은 이때부터 친일부호 장승원 집안과 후대를 잇는 악연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결국 장승원을 처단하고 그 주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후 장승원의 후손들은 조선공로자명감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고 남선전기(지금의 한국전력) 사장과 미군정 당시 수도경찰청장, 초대 외부장관, 국무총리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해방정국에는 좌익 세력을 탄압하기도 했다. 친일과 매국의 대물림이 아닐 수가 없다.
장승원의 후손들이 부와 권력을 장악했던 것과 달리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 박상진의 후손들은 ‘사상범의 일족’으로 낙인찍혀 이곳저곳을 떠돌며 당장의 끼니마저 걱정해야 했다.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벌였던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의 서훈등급이 3등급에 불과한 것은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총리가 된 장택상(장승원 아들)이 관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개개인의 신념으로 선택된 삶으로 부와 고통이 지금도 대물림되고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아직도 대한민국이 식민지 인양 도발을 하고 있고 정재계(政財界)엔 친일파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 친일파들의 돈 몇 푼에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무지한 사람들과 일본의 보복 조치에 많은 시민이 불매운동에 매진할 때 일본기업이 내복을 무료로 준다는 말에 끝도 없이 줄을 서 있는 이들을 볼 때 아직도 개개인의 생각과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저들을 보면 친일부호 장승원 일가와 겹쳐지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친일파와 독립투사의 싸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조국광복을 하자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같은 뜻이니 이 큰 죄를 성토해 우리 동포를 경계하노라’ 이 글은 장승원을 처단하고자 하여 그의 집에 남긴 광복회원의 글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무섭다.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국민들이 속히 깨어나 친일파들을 경계하고 청소해 진정한 광복을 이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