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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익두

출생:1874년

사망: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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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성령을 받으라>

김익두

한국교회의 무디로 일컬어지며 한국기독교 초기의 대부흥을 이끌었던 김익두 목사는 1874년 황해도 안악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과거시험과 사업에 실패한 후 술과 놀음에 빠져 있던 중에 선교사 윌리엄 스왈른(William L. Swallen)이 인도하는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1901년 1월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1906년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해서 1910년에 3회로 졸업하면서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불 같은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며 부흥회와 설교운동을 이끌었는데 특별히 1919년 경북 달성의 현풍교회 사경회를 기점으로 수많은 이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기적은 일제 치하라는 민족적 고난과 좌절에 빠져 있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김익두 목사는 한국, 중국과 시베리아, 일본 등지를 누비며 776회의 부흥회를 인도했고, 150개 처에 교회당을 건축하였으며, 2만 8,000여 회의 설교를 감당했다. 김익두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주기철 목사가 은혜를 받았으며, 특히 전재선 목사와 이성봉 목사 같은 한국교회의 위대한 부흥사들이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김익두 목사의 이적 행진은 교회 안팎의 수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령의 림택권 목사를 필두로 ‘이적명증회(異蹟明證會)’가 조직되어 김익두 목사의 이적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한편 그 결과로 1921년 《조선예수교회 이적명증》이란 책이 발간되었다.
이후 김익두 목사는 서울 남대문교회와 승동교회를 담임했고, 해방 이후 이북의 여러 지역을 돌면서 적극적으로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50년 10월 14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오다가 후퇴하는 북한의 인민군에게 총살되어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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