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마도초등, 화도중, 인천대건고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포스코 근무, 현대그룹 임원, 국제조명 사장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제주도에서 집필활동을 해오다가,
2007년 <문학과 의식>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했고,
<의녀 김만덕>, <이방익표류기>, <제주표류인 이방익의 길을 따라가다>를 출간했다.
장편소설 『말,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나는 9년 전 제주도에 건너와 정착하게 된 것을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기질로 태어났기 때문에 제주도에 와서도 풍광만 즐기며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이 살아왔던 이야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의 창문을 열어놓고 제주에 관한 책을 읽고 유적지를 찾아다니고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산과 들과 바다를 쏘다녔다. 제주의 땅은 유적지가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밭과 못과 내에도 전설이 묻어 있었다.
그러던 중에 400여 년 전에 제주에 살았고 무려 10,000마리의 말을 키운 그 사람, 김만일(金萬鎰) 공의 행적을 찾기 시작했다. 마치 문화유산을, 아니 값진 유물을 발굴하는 심정이었다. 그에 대한 자료는 별로 없었으나, 그가 활동하던 무대, 즉 그가 말을 키우던 평원은 제주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가 키우는 말들은 한때 제주의 국마목장 전체에서 키우는 말의 수와 버금가거나 그 수를 능가하기도 하였다. 그는 요즘으로 말하면 대기업의 총수였다.
그는 왜 그 많은 말들을 키웠을까? 단지 돈을 벌기 위하여, 부자가 되기 위하여, 명예를 얻기 위하여 말들을 증산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말은 국력의 상징임을 알았던 그였기에, 그의 시선은 대평원을 넘어서 나라의 현실과 장래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자료의 부족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시야를 넓혀서 당대의 나라 사정과 국제정세로 시야를 넓혀 나갔다. 나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문학의 관점에서, 김만일과 말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증할 수 없는 사실들을 놓고 이론을 세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의 바탕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행간을 채워나갔다.
나는 이 소설에서, 다가올 전란에 대비하여 군사양성과 전마육성을 주장한 율곡 선생을 떠올렸고 욱일승천하는 만주세력을 염려하여 성숙한 외교정책을 폈던 광해군을 재해석했다.
또 토박한 땅에 살면서 끊임없는 자연재해로 힘든 날들을 보내야 했던 제주 사람들이, 관리들의 착취와 가렴주구로 인하여 더 큰 고통을 당해 왔던 역사적 사실을 이 소설에서 고발하려 했다.
나는 몇 가지 역사기록을 눈여겨보면서 이 소설에서 준마(駿馬)를 소재로 다루기로 하면서, 고사(故事)와 전설에서 소설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준마를 소재로 다룸에 있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 없는 여러 단초와 정황이 있기에 나의 역사적 상상력은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김만일이 종마를 보존하려는 피나는 노력과 전마(戰馬)를 생산하여 국가에 바친 흔적으로 볼 때 『말(馬),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는 이 나라의 전쟁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하여 자료를 발굴하는 동안 내내, 나는 제주가 낳은, 제주에 뿌리내린 인물들이 제주에 다녀간 사람들에 비하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인색한 정서에 의아심을 가졌다. 이 세대, 아니 다음 세대라도 누군가 나서서 제주를 빛낸 많은 인물들을 발굴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