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leasure!”
초록색 얇은 코트 안에 바람을 잔뜩 품고서 마치 메리 포핀스처럼 하늘로 붕 날아올랐던 아찔한 순간 저를 구해준 호주 신사분이 하셨던 말이지요. 그분의 말이 저의 인생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1991년부터 2021년까지 30년 세월을 우리나라와 해외 여섯 나라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남편이 기업체의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호주로 갈 때 당시 김포공항으로 배웅을 나왔던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는데 영화에서처럼 챙 넓은 멋진 모자를 쓰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했던 말은 지금도 저를 웃음 짓게 합니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다시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법인장으로 잇달아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낯선 이국땅에서 사는 삶이 이어졌습니다. 여행지로서는 더없이 아름다운 나라였지만, 이방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일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그리고 향수병은 물론 회사와 주재원들의 일들로 긴장 속에서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지혜를 발휘하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브라질과 러시아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남편은 지역의 총괄로 일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50개국 이상의 법인을 책임진 남편에게 회사에서 특별히 전용기를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2021년 싱가포르에서 귀임하며 유목민처럼 살던 삶을 정리했습니다. 이 글은 이러한 여정에서 제가 경험한 것들을 담은 것입니다. 해외 주재원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