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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소란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1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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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세트] 좋아하는 마음 없이 + 오늘의 시 - 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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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이새해는 특별한 눈을 가진 시인이다. 일상과 비일상 사이 은밀히 자리한 어떤 틈을 보는 눈. 그런 틈을 보기 위해 시인은 한껏 몸을 낮추거나 웅크리거나 구석에 조용히 멈춰 서 있는 사람 같다. “봐야만 하는 것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파수」) 구태여 엉거주춤하기를 택한 사람. 행여 제 존재가 해가 될까 각별히 조심하면서. 그러면서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본다. “오늘은 그것을 보았다”(「노수」) 하는 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찬찬히 따르자면, 미세한 먼지의 움직임이며 공기의 흐름, 돌의 표정까지 읽게 된다. “저 깊지도 않은 웅덩이에 빠져 죽은”(「옮겨심기」) 누군가를 대면하거나 시시각각 썩어가는 몸의 냄새를 맡게도 된다. 시인은 이토록 예민한 촉수를 가졌구나. 시인의 감각이란 지나치게 유심한 나머지 시를 읽는 이따금 “보호필름을 핸드폰 스크린에 붙이듯”(「노크」) 페이지를 넘겨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현실을 살면서도 현실 밖으로 한 발을 내밀고 있는 것. 티 안 나게 슬며시 먼 곳을 바라보는 것. 분명 외로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어째서 그는, 그의 화자들은 동떨어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로서, 마치 부유하듯 머무는 것일까.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수시로 다른 삶을 체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짐작건대 이는 살아가는 일에 대한 질문과 답을 거듭하는 그만의 방식이리라. 어느 ‘기도문’에도 적혀 있지 않은,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 준 적 없는 생활과 책임을 상상하면서”(「검사지」) 그는 끊임없이 본다. 부지중에 몸을 움직인다. 그러는 동안 이 세계가 감춘 ‘재앙’과도 같은 여러 다단한 폭력의 양상은 드러나고, 그 속에 끈질기게 뒤엉킨 죄의식과 연민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시인의 보법은 특유의 신비를 머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신비조차 그는 원치 않을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등장인물」)어 보인다. 그는 한 방향을 가리켜 무언가를 이르거나 뜻하는 자는 아니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시종 주의를 부르짖는 요즈음의 셈법과는 무관하게, 그는 다만 경계에 서서 고요히 궁리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어쩔 수 없는 절실은 불거지는 것. “나는 나와 같이 죽어가는 자들이 들려주는 농담을 원한다” 넌지시 고백할 때.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가장 위험해지는 형제들아” 호명할 때. 아, 그는 기다리고 있구나. “만나본 적 없는”(「후원요청서」) 동류를. 안온한 일상 속 자신만의 ‘모험’을 전개해가는 이들을.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감싸자면, 그는 문득 일어설 것이다. 자신을 향한 팔을 기꺼이 끌어다 잡을 것이다.
2.
시를 읽는 내내 미간에 잔뜩 힘을 주게 되었다. 도무지 아름답지 않아서. 시인이 그려낸 풍경이 너무 캄캄하고 너절해서. 이래도 되나? 이렇게 발가벗어도? “공공 근로 나가는 어머니”(「아침 드라마」)와 “구멍 난 양말을 벗어 뒤꿈치에 박인 각질을 도려내”는 아버지(「4B」), “막일을 마치고 온” 아버지를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나’(「서향」). “쏟아진 수면제”나 “비문 가득한 유서” 같은 것(「하트세이버」)이 곳곳에 득시글한데……. 이 곁에서 시인은 “울면서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비굴하게 설치다가 부러진 의자처럼 옆으로 쓰러”지기 일쑤지만(「단 하나의 의자」). 그런 그가 나는 좋았다. “이 도시의 잉걸불을 아름다운 점묘화라” 말하지 않아서(「남문사거리」). “쪽팔린 줄”(「문경수」) 모르고 삶의 치부로 내달릴 줄 알아서. 기꺼이 엎어질 줄 알아서. 그러다가도 “몽동발이가 된 어머니의 지팡이를 짚고”(「올레길」) 일어설 줄 알아서. 예리한 시선을, 악착한 생활의 자세를 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따금 “벼린 칼로 길목을 썰”며(「승희미용실」)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남다른 결기 또한. 시는, 좋은 시는 저마다 날카로운 어떤 것을 쥐고 있다고 믿는다. 문경수의 시에서 그런 칼을 감지하게 되는 것은 단지 처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죽어가는 새를 품에 안고 달리며 “살릴 수 있어” 되뇌면서도 이런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 정도면 나 정도 쓰면” 자문하는 일. “잘 살고 있는 거 맞죠?” 시시로 묻고 “병든 개처럼” 울부짖는 일(「카운트다운」). 스스로를 정직하게 대면하는 자 특유의 회의가 이토록 선연한 때문. “못난 마음”을 뉘우치기 위해 시인은 자신의 가슴을 다름 아닌 “쇠갈고리에 걸”쳐 둔다(「네 멋대로 써라」). 시가, 몸에 새긴 칼자국이 기어코 “빛의 일렁임”(「올레길」)을 드리울 줄을 아는 것이다.
3.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일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라, 실패하고 어긋나고 부서진 인간”으로서. 입이 아니라 몸으로 말해 낼 진실을 위해 오늘도 다만 삶을 쓰고, 읽고, 고칠 뿐. 되풀이할 뿐.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라고 가까스로 힘주어 이야기하기까지 한 작가가 진지하게 치러 낸 내적 분투는 더없이 숭고한 것이었다.
4.
김명순,이라는 이름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더 한참 전의 일입니다. 여러 해 전 우연한 계기로 근대 여성 시인들의 대표작들을 한데 모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많은 시편들 가운데 유독 그의 시를 반복해서 읽게 되었어요. 너무 깊었다고 할까, 짙었다고 할까. “나는 세상에 다신 안 오리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작별합시다”(「유언」) 같은 선득한 목소리 앞에서는 누구라도 일렁이는 마음을 누를 도리가 없는 것이겠지요. 언젠가 제대로 읽어야지, 공부해봐야지, 막연한 결심을 구실로 가까스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납니다. (…) 그러면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함께도 읽고, 혼자서도 읽는 동안 제 뇌리는 온통 김명순이었어요. 그즈음 문학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저는 습관처럼 김명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를 아느냐고.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김명순? 그게 누구지?” 하는 것이지요. 그 난감한 표정을 대하자면 괜히 서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알긴 알지. 근데 지금 와서 웬 김명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 이 또한 서운해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글은 언제 어디서나 읽혀야 마땅한 것일 텐데요. 그렇지만 에세이를 정리하기로 하면서 저 또한 속으로 되풀이해 물었던 게 사실입니다. 왜 김명순인가? 그러나 이는 ‘지금 왜 김명순인가?’ 하는 질문보다 ‘나는 왜 김명순인가?’ 하는 질문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전자는 그의 작품을 얼마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누구라도 쉽게 해소할 수 있는 의문이라 확신했으니까요. ‘지금 왜’는 곧 ‘지금도 반드시’로 바뀔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5.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2월 19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6,300 보러 가기
이토록 순하고 다정한 슬픔이라니. 그는 “돌멩이가 되어” 꿈을 꾸는 사람. “돌멩이는 돌멩이의 세상에서” 기꺼이 “살아” 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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