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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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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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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쇼를 멈추지 못한다
ㅣ
포엠포엠 시인선 41
양재건
(지은이) |
포엠포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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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건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풍경을 시인만의 독특한 감수성으로 형상화하는 데 있다. 그는 무던하게 흘러가거나 조용히 머물러 있는 생활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적 형식에 민감하다. 바깥세계와 내면이 은밀하게 접촉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감성의 불꽃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시적 상상은 시인 자신의 실존적인 자각으로 연결되어 세계와 자아가 하나로 묶는 주요한 매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서정적 자아와 세계가 서로 괴리되지 않고 하나로 일치되려 하는 근원적인 욕망이 작동한다. 자연의 상태와 변화가 일상에 일으키는 잔잔한 파문에 시인이 감응할 때 비로소 시적인 세계가 탄생하는 법이다. 그는 이러한 시 쓰기를 통해 우리와 세계가 행복하게 조응하는 방법 하나 제시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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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하나, 황금빛 바다 위를 지나가네
ㅣ
작가마을 시인선 69
김선희
(지은이) |
작가마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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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우주의 한복판을 상상하면서 우리가 별에서 온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도 별의 일부요 우주를 구성하는 한 요소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김선희 시집은 우주에 빼곡이 박혀 있는 별들의 움직임과 별빛의 눈부신 산란 앞에 마주 선 인간의 겸손과 침묵을 노래한다. 이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상상력과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가 있다. 엄청난 대폭발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면 조물주란 게 있어서 이 우주를 만들었든 관계없이 지금 우리를 한껏 둘러싸고 우리에게 빛을 주고 있는 우주의 품에 안겨 있는 존재가 우리이다. 이런 사실을 떠올리면 낮고 작은 존재에게 바치는 순정한 행복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입으로 만든 귀중하고 아름다운 노랫소리인 시를 통해 우리 자신과 세계와 우주의 장엄함과 숭고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경배할 수가 있는 것이다. 김선희의 이번 시집은 그런 아름답고 조화로운 화음이 울려 퍼지는 공간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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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기억하는 시간이 있다
ㅣ
사이펀 현대시인선 23
김순아
(지은이) |
작가마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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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이 상투적인 말이 김순아 시집에 오롯이 중심추처럼 놓여 있다면 어떨까. 때로는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때로는 진작에 무엇을 찾으러 나섰다가 갑자기 길을 잃어 방황하는 나그네처럼 김순아의 시는 우리 눈을 향해 진자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조차도 시간을 거슬러 왔던 길 헤집으며 돌아다닐 것만 같다. 시인은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다. 고향을 잊은 현대인에게 시인이 찾는 고향의 풍경을 가늠할 수 있다면, 아마 시간의 물결이 요동치는 마법의 공간 틈바구니에서 잊은 듯 다시 태어나는 존재들이 손짓할 것이다. 손수건처럼 나부끼면서, 나뭇잎 살랑살랑 흩어져 가는 수많은 ‘나’들이 내게 말을 걸 때까지, 그런 나를 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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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시계
ㅣ
작가마을 시인선 59
김종태
(지은이) |
작가마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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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의 시는 언어를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서도 얼마나 말이 주는 힘과 생성력을 펼쳐보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지난날 ‘농촌공동체’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교향과도 같은 소재와 이미지를 능숙한 솜씨로 재현한다. 여기에는 거짓과 속임이 없다. 그래서 자연의 넉넉한 품에 안긴 듯 평안하고 온기가 스며든다. (------) 김종태 시에 드러나는 삶의 형식에서 비롯한 존재 양상은 실상 우리가 살면서 만나고 겪게 되는 자잘한 생활양식을 깊게 응시한 데서 형상화된 풍경들의 다양한 면모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하루하루 이어가는 생명의 거룩한 모습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각양각색의 눈짓들이 담겨져 있다. 지난날의 기억에서 배태되는 그리움도 포함된다. 특히 「허기」에 형상화되어있는 그리움은 허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아이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이다. 누구나 한번 겪었을 법한, 끼니 때 보이지 않는 자식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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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내게 준 행복
이향영
(지은이) |
작가마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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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영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거의 ‘영덕자연생활교육원’ 체험에서 비롯한 마음과 생각들로 집약되어 있다. 이 사실은 시인이 병마를 치유하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곳이 영덕자연생활교육원이라는 점과, 아울러 그곳의 체험이 시인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알러준다. 한 사람에게 특별한 체험을 제공해주는 공간이나 장소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그곳이 한 사람의 생각과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뀌게 했다면 더욱 그렇다. 장소가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깊고 풍부하다. 장소나 공간은 단지 건물이나 땅, 혹은 그곳을 둘러싼 풍경에만 한정짓지 않는 의미와 세계가 담겨 있다. 가령 그곳에서 보고 겪어서 느끼게 된 새로운 사상이나 세계관이라든가, 이제껏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실이 돌연 부각되거나 크게 다가와 이전의 생각을 돌려놓게 되는 경우라든가, 혹은 낯선 공간이 주는 느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와 마치 고향보다 정겨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경우 등이 그렇다. 이향영의 시는 자신에게 그런 특별한 공간이 되어주었던 영덕자연생활교육원에 대한 체험을 이번 시집을 통해 드러낸다. 여기에는 자연이 주는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행복한 감정을 심어주는지 확인해주는 시인의 육성이 담겨져 있다. 단순하고 깨끗한 언어로써 자아내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독자들은 비록 그곳에 가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나마 마치 그곳에 시인과 함께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인공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의 삶으로 병을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한 시인의 마음상태를 이번 시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향영 시인은 자신의 특별한 체험에서 시작한 깨달음의 진폭을 이 세계 전체로 넓히려 한다. 이번 시집은 한마디로 말해 사랑을 위한 순수한 시인의 노래라 할 수 있다. 모든 존재를 껴안고, 모든 존재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모든 존재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사랑의 마음을 더욱 지펴나가기 위한 시인의 의지를 이번 시집을 통해 확인한다. 이런 시인의 말과 노래가 쌓여 결국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찬 세상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정 훈(문학평론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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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ㅣ
사이펀 현대시인선 7
이문영
(지은이) |
작가마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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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스트
이번 시집 『새』는 ‘새’로 은유된, 아니 마치 새로 화한 인간의 삶과 사유들이 펼쳐져 있다. 새는 작지만 자유롭게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날아가는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오래 전부터 새를 동경하고 그리워했다. 새로 형상화한 숱한 시편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만큼 인간은 유한하고 근원적으로 구속된 존재인 것이다. 이문영은 유년의 기억과 실존적 고통을 통해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깊은 고통과 상처를 노래한다. 여기에는 그리움도 실려져 있고 이상과 동경도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를 규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실존의 그늘이다. 실존, 이는 참으로 무거운 말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짐들을 지탱해야만 하는 운명을 인간은 지녔기에 중력의 자기장에서 자유롭지가 않다. 시인은 세계와 현실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노래한다. 모든 시인들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문영도 예외일 수 없다. 그의 시들에는 천천하고도 묵직하게 몸과 마음을 내리누르는 공기가 느껴진다. 아픔과 상처의 더께가 오랫동안 쌓여 무덤덤해진 삶의 테두리에서 내뱉는 말들이기에 그렇다. 이 말들의 출처를 더듬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부딪치면서 겪게 되는 일상의 풍경들이 있다. 그렇지만 똑같은 일상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면서 감각화 하는지가 시인과 범부(凡夫)를 갈라놓는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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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에는 이유가 있다
ㅣ
작가마을 시인선 42
이금숙
(지은이) |
작가마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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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스트
시인은 아파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두고 아파하기도 하지만 다른 존재들을 보며 맘 아파하는 사람이 시인인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 또한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시인도 느낀다.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볼 때 시인도 이러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 이금숙의 시는 묻는다.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은 무엇인가. 사랑의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를 끊임없이 되뇌면서, 이 흔들리는 세계에서 우리가 진정한 사랑과 소망으로 서로를 보듬고 안아주는 세상은 언제쯤 올 것인가, 이번 시집은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시인의 마음이 우주에 닿을 수 있기를 간구하는 언어의 흔적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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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ㅣ
포엠포엠 시인선 29
이우돈
(지은이) |
포엠포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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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돈의 시에서 감지되는 섬세하면서도 대상의 깊은 속을 파고드는 예리한 언어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운 것들을 형상화하면서도, 또한 화자의 현재 심사를 표현하면서도 바닥 깊은 곳에서 울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상을 한껏 떠밀고 싶어 했으면서도, 한편으로 세상을 뜨겁게 끌어안을 줄도 알았던 시인의 음성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모를 일이다.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계절 따라 피고지곤 하는 초목들도 시간 따라 시시각각 흘러간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정작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애타는 그리움은 휘발될 줄을 모른다. 갈수록 더해가는 것은 쓰라리게 데워만 가는 마음이요, 갈수록 떠나가는 것은 지난 날 함께 했던 생명들이다. 여기에서 시인의 윤리관은 싹튼다. 모든 것을 떠나보내면서도 존재성을 지닌 것들의 의미를 잃지 않고 상기하는 태도다. 이를 무르익은 마음이라고 하면 어떨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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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sns를 전송하다
김새록
(지은이) |
작가마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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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록 시인의 시편들 속에 읊은 정조는 나지막하면서도 차분하다. 현대시가 대체로 표방하는 비극적이거나 허무적인 세계관도 보이지 않고 소박하게 세상과 함께 어우러지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런 삶의 태도는 쉽게 얻기 힘들다. 대개 시적 과잉이나 잔재주에 빠져 자신을 과대포장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인의 눈은 사물이나 대상의 눈높이에 맞춰 있다. 으스대지 않고 납작 엎딘, 겸허와 마음의 청빈 속에 자신을 가두기 때문이다. 시집에 실린 시들이 그래서 편안하면서도 경쾌하게 읽힌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자연과 함께 순환하는 소박한 존재가 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생명공동체로서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을 추스르면서 생의 기쁨을 만끽한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의 표현이다. 이 세계는 실상 예술이 지향하는 세계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자아와 세계의 동일시로 흔히 정의 내리는 서정시의 면목을 김새록 시인은 잘 보여준다 하겠다. 시란 시인의 삶의 고름을 짜내어 말간 언어로 다듬은 말의 항아리다. 김새록의 시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와 형상화도 그런 측면에서 바라다봐야 한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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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집
ㅣ
시에시선 34
최장락
(지은이) |
시와에세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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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수식이 붙지 않는 시는 곧바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런저런 말의 보푸라기를 제거하니 시인의 정감만이 오롯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흉흉한 소문과 가족의 물컹한 체온, 그리고 생활의 모서리에 턱, 하고 걸리는 사물에 대한 사념들이 이번 시집에 오순도순 모여 있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축축한 서정으로, 말들의 잔등에 올라타 시인이 그리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세계와 고독한 단독자로서 시인이 맞서고, 손을 잡고, 어긋나면서 비틀거리는 행로를 확인하게 된다. 이는 최장락 시인이 마련해놓은 시적 장치일까, 아니면 언어의 난장(亂場)이 절로 만들어낸 오솔길 바닥의 표면이 주는 감촉일까, 아니면 순전히 내 느낌일까. 분명한 사실은 그의 언어에 묻은 곡진한 마음과 정신이 시의 표면을 말갛지만 서슬 퍼런 물기로 씌운다는 점이다. 맑지만 으슥하다. 그늘이 졌지만 따가운 눈총이 있다. 냉소를 띄지만 소망을 품는다. 이것이 최장락의 시가 품은 이중성이자 미덕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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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감각
최순해
(지은이) |
신생(전망)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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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마법은 현실 공간에서 벌어지는 온갖 현상과 사건들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딘가 묘한 꿈틀거림으로 보이게 한다. 거시적인 시간과 생명관에 자신의 눈을 맞추면 그리 평온하고 적요하게 보일 수가 없는 것이라도 눈높이를 낯추거나 미세하게 일상을 들여다보면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게 비뚤비뚤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각이 진 것만 같다. 이효애 시인에게는 자연적 삶이 주는 풍요로움과 신비적 은총에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존재의 미로 같은 길에 관한 상념을 끊지 못한다. 삶의 아이러니는 존재의 실체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된다. 해답없는 물음이지만, 현실이 존재와 주고받는 무수한 대화와 몸짓들이 지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자연적 소재들이 대부분인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 중에서 독특하면서도 일상적인 단면을 소재로 한 다음의 시에서 그 물음을 던지는 포즈를 볼 수 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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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안의 고백
ㅣ
전망시선 123
이효애
(지은이) |
신생(전망)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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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마법은 현실 공간에서 벌어지는 온갖 현상과 사건들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딘가 묘한 꿈틀거림으로 보이게 한다. 거시적인 시간과 생명관에 자신의 눈을 맞추면 그리 평온하고 적요하게 보일 수가 없는 것이라도 눈높이를 낯추거나 미세하게 일상을 들여다보면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게 비뚤비뚤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각이 진 것만 같다. 이효애 시인에게는 자연적 삶이 주는 풍요로움과 신비적 은총에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존재의 미로 같은 길에 관한 상념을 끊지 못한다. 삶의 아이러니는 존재의 실체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된다. 해답없는 물음이지만, 현실이 존재와 주고받는 무수한 대화와 몸짓들이 지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자연적 소재들이 대부분인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 중에서 독특하면서도 일상적인 단면을 소재로 한 다음의 시에서 그 물음을 던지는 포즈를 볼 수 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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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걷는 저녁
- 정의태 유고시집
정의태
(지은이) |
신생(전망)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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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뒤로 걷는 저녁』의 시제처럼 정의태의 시편들도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의미의 말들을 휘젓고 나와 또 다른 세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하고 사람들 사이를 활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의 언중에 떨림처럼 번져나가는 추상같은 풍자가 비단 정치사회적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묘한 물건에 대한 깊은 사랑이 덧씌워져 있기도 하지만, 이와 아울러 서늘하면서도 바닥을 알 길 없는 신비한 세계 속을 그가 헤아려보려는 몸짓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축축한 지성(知性)적 인간이었던 시인의 펜대를 매끄럽게 하지 못하고 마찰을 주었던 한국사회와 개인적 삶의 역경에 어린 그늘을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시인들이 그렇겠지만 시인 또한 시 쓰기만큼 곤혹스럽지만 행복했을 생(生)의 작업은 상상하기 힘들었으리라. 차츰 차츰 더께처럼 쌓여만 갔을 감성과 지성의 업보에 서렸던 습도는 지금쯤 헐렁하고 시원한 바람에 씻겨 내려갔을까. 하지만 그의 유고시편들은, 아무래도 필자의 이런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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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달빛극장
- 우아지 시조집
우아지
(지은이) |
이미지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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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상상을 절묘하게 버무려낸 시의 형상화!
우아지의 시조를 보며 사람이 사는 의미를 장소와 물건, 그리고 사람의 형상에서 발견하게 됨을 알게 된다. 그 틈새는 촘촘하되 결코 가볍지 않다. 언어가 부리는 마술이다. 우아지의 말은 청명하고 위태롭다. 청명하다는 말은 군더더기를 삭제했다는 뜻이요, 위태롭다는 말은 현실에서 문학적 상상의 세계로 곧바로 넘어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의 뜻이다. 현실과 상상이 절묘하게 버무러져 있다는 말이다. 이는 또한 시조가 창출할 수 있는 교묘한 에너지이기도 하다. 우아지, 그 이름만큼이나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지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작품을 보며 나는 더러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은 욕망이 일기도 한다. 말은 세계를 다시 되돌아보는 동인이고 계기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시각이 차츰 조밀해지겠다는 생각을 우아지의 시조를 읽으며 하게 된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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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과 4
ㅣ
포엠포엠 시인선 19
고훈실
(지은이) |
포엠포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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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체험은 삶의 객관적인 사실태와 다르다. 또한 삶의 체험의 표현으로서 시적 진술은, 현상학적으로 말해 세계에 대한 판단중지 (epoche)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기묘하고 우울한 내면의 에너지가 세계와 맞닿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단면들에 새겨지는 무늬, 이 쓸쓸한 무늬의 수기(手記)를 고훈실 시인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단순한 시 읽기의 영역에서 벗어나 시인이 아로새긴 신산한 언어적 문신이 그려놓는 세계의 지형을 더듬는 일에 진배없을 것이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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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향기
ㅣ
작가마을 시인선 26
류선희
(지은이) |
작가마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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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선희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노래하는 소재들은 지극히 소박하면서 일상에서 자주 대하는 것들이다. 시의 상징 또한 인간 보편적인 감정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이미지와 관계가 깊다. 시인은 객관적 상관물을 절절하게 불러들임으로써 자신의 시적 전략을 완수한다. 결여된 공간과 비어있는 세계, 늘 한 곳이 빠져버려 기형적인 세계에서 아옹다옹하며 살아가는 지금 이곳의 결손 상태를, 시인은 자연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소재로써 드러내고 명시한다. 겸허와 자기 비움의 정신에서 비롯한 시적 형상화다. 대체로 이런 시는 담백하고 정갈한 맛이 있다. 여기에 또한 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포함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는 세계의 숨겨진 이면을 들추면서 튀어나오는 정신의 의미화가 작용한 결과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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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가 자라는 방식
ㅣ
포엠포엠 시인선 16
조연수
(지은이) |
포엠포엠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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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상실을 감내하는 자의 독백인 그에게 세계는 한 점 없는 길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미로다. 미로 같은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요원하지만, 그 요원한 숲길이기에 한 번이라도 더 발을 디딜 수 있다. 왜냐하면 자명한 세상이란 단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어떤 이의 말처럼, 어지럽게 납작 엎드려 진군하는 사물들의 등짝이 희미하게나마 빛을 내며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시가 굳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연약한 존재를 향해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조연수의 시를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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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더 계곡의 은빛 벽화
ㅣ
포엠포엠 시인선 12
김문환
(지은이) |
포엠포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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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라 말하지 말라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상춘想春」 중에서 김문환의 시는 존재가 환하게 타오르는 생명적 불꽃을 염원하지만, 실존적 현실의 한계를 냉정히 느끼면서 이 둘 사이의 시적 화해를 모색한다. 속악하고 부정한 현실세계는 여느 시인들이 지금껏 다루어왔던 소재다. 김문환 또한 이들이 보여준 시적 출발과 넓은 의미에서 함께 하는 듯하지만, 그 양상은 독특하다. 그러니까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 비관적이고 비극적인 세계 인식으로 치닫는 게 아니라 시인만의 독지 獨知한 형이상학적 지평으로 넘어가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이 또한 바야흐로 그만의 시적 세계가 개시되는 증거로 보아도 될 것이다. 시적 세계관의 쟁취 과정에서 알맞게 익은 그의 내면의 흔적이 아닐까. 하지만 이는 상흔傷痕이기도 할 것이다. 상처로 곪은 자리에서 시간의 더께가 내려 앉은 징표라고해도 무방하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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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
ㅣ
푸른사상 시선 60
임윤
(지은이) |
푸른사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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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현실을 이겨내는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그 비정하고도 추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일이다. 추악하고 괴기스러운 눈앞의 풍광에 눈동자가 꺾이거나 끝내 눈이 멀어버릴지라도 가감 없는 현실의 응시야말로, 자신이 딛고 있는 이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역사는 곧이곧대로, 혹은 정의로운 선택만을 행하지는 않는다. 근시안으로 보면 때때로 역사 또한 후퇴하기도 한다. 인간의 역사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미래의 청사진만을 줌인(zoom in)하여 대형 스크린에 띄우기만 하는 얼치기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우리가 이 추악한 인간의 이야기들 속에서 무언가 건져내려고 애를 쓰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부정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니 낯부끄러운 과거의 자화상일지라도 현재를 향해 달려왔던 또 다른 우리들의 민낯을 복기하면서 공(功) 과(過)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외면해버렸던 진실들 때문에 진창의 구렁 속으로 떨어지는 투명한 정신의 목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목소리는 거대한 폭거에 시달리고 절망하면서도 끝내 삼킬 수 없었던 영혼의 메아리다. 시는 그런 목소리의 생생한 문학적 증거다. 시인은 세계가 올바로 놓여 있어야 할 자리를 선취해서 보여주는 사람이다. 임윤은 이번 시집에서 지금 이곳의 삶의 현장에서 곰팡이처럼 번져가는 어떤 거대한 죄악의 얼굴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위정자들의 터무니없는 경제 논리로 점점 죽어가는 이 땅과 바다의 속살을 그려낸다. 그 필치는 서늘하면서 날카롭다. 그에게 아쉬운 것은 세계와 인간이 한데 어우러지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해 공동체이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지옥도와도 같은 현실과 고독한 실존이 해답을 상실한 채 떠도는 현재의 공간이다. 이는 시인을 둘러싼 세계와, 그 검은 세계에 가린 채 한껏 부풀어 올랐을 쓸쓸함의 거처이기도 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핵 발전소의 위험을 고발하는 시와 시인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생태를 더듬는 시로, 후자의 경우 일련의 여행 시와 일상의 감성을 드러낸 시로 드러난다. 임윤의 시가 결국 상처를 응시하고 이를 따스한 온기로 보듬는 데로 나아가는 방향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린 점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돌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시도 맹랑한 말장난에 그치기 때문이다. 요원하기만 한 현실의 아포리아는 시적 언어에 고스란히 각인된다. 그런데 시 속에 각인된 현실의 풍경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시인이라는 실존적 개인의 내면이 모자이크된 결과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개인과 세계가 결코 따로 떨어져서 놓일 수 없다는 인식의 경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일은 있어도 내면에 빠져버려 우주적 청맹과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인은 그런 위험에 대해 늘 경계하려 한다. 그가 일상에서 보고 겪게 되는 사소한 경험조차 우리 시대의 단면을 짐작하게 하는 알레고리로 기능하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서정이 죽어버린 시간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가”(「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라는 독백에서도 보듯이, 서정의 죽음을 딛고 꼿꼿이 일어서는 새로운 시적 감성은 시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불온한 현실의 뿌리에 낙원의 유전자가 있었기에 우리는 세상을 개탄하는 마음의 결에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점치게 된다. 우선 죽어버린 서정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는 데서 그것은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임윤의 시는 세상의 온갖 죽음과 눈물과 탄식을 끌어모아서 이들을 달래고 한바탕 굿을 벌이는 진혼굿이 아닐까. 더러 황폐한 들판에서도 장미는 피듯이, 진창의 세상에서도 진실의 가치는 녹슬지 않다는 사실을 시인은 시로써 증거하는 듯하다. 꽁꽁 얼어버린 우리 시대의 꽃은 해빙의 날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직은 얼어버리지 않았고, 더욱이 꽃이라고 할 만한 가치도 실종된 듯한 현실에서 시는 무엇을 애타게 부르고 있을까. 모든 언어가 결빙된 자리에서 피는 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시의 꽃이리라. 시인은 그 꽃의 속살을 미리 만지며 우리에게 제안을 하는 것이다. 자, 어떤 자리에서 시작할 것인가. 『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가 제기하는 물음이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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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ㅣ
애지시선 57
송유미
(지은이) |
애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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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 시인은,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된 이전부터 시를 써왔고, 여러 갈래의 실험적 글쓰기를 해왔던 시인에게 ‘시’란 과연 무엇일까.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시는 비논리의 세계입니다.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시 읽기에는 독자의 상상력이 시의 완성이지 않을까요.” 그렇다. 독자의 상상력은, 각자가 지니는 것이겠지만 ‘시’로써 촉발된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촉박하게 하는 시가 좋은 시이며, 송유미 시인 또한 이 점을 강조한다. 상상이 부족한 시대에 상상을 주문하는 상업자본의 광고논리와는 다른 독자의 상상력은 시인의 언어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훌륭한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낸다. 문화란 시인의 수가 늘어나고, 이에 수요가 급증하면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사람의 진정한 독자라도 있어서, 그의 삶이, 시를 감상하면서 터득한 세계에 대한 형안이 생길 때 문화의 불씨는 되살아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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