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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겨울
ㅣ
헤세 4계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은이),
두행숙
(옮긴이) |
마인드큐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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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축적과 내적 성장으로 또다른 나를 예비하는 계절”
1892년 겨울은 정말 춥고, 일이월에는 눈도 많이 내린다. 열네 살의 소년 헤르만 헤세가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맞는 겨울이다. 부모님의 소망에 따라 목회자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배움의 길이다. 그러나 헤세는 겨울 내내 심각한 번민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혹독한 추위가 서서히 물러가는 겨울이 끝나갈 무렵 그는 집으로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거짓편지를 보낸다. 그러고는 자신의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삼월 초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탈출한다. 밤새도록 눈 덮인 대지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허허벌판에 쌓여있는 짚더미 속에서 꽁꽁 언 몸을 웅크리기도 한다. 1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골 경찰에게 마울브론으로 가는 길을 물어본다. 그러나 그는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를 이상히 여긴 경찰관이 그를 인도하여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된다. 그 후 헤세에게는 금고형이 내려지고 밤 12시 반부터 날이 샐 때까지 8시간동안 감방에서 죄과를 치른다. 그러나 그의 도주는 겨울 내내 고민하며 뜬눈으로 여러 밤을 지새운 다음에 내려진 결론이다. 훗날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그의 탈출은 “시인이 되든가,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싹들이 움트는 봄이 되면서 결국 헤세는 신학교를 떠난다. 공공연한 무신론자인 이복형이 사는 어느 한 마을에서 오이게니라는 매력적인 여인을 알게 된다. 그녀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헤세는 이 젊은 여인을 열렬히 사랑하며 그녀를 위한 시를 써 바친다. 그녀는 그의 사랑이 바보 같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량한 태도로 밝혀준다. 그러나 헤세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연발권총을 구입해 자살을 시도한다. 그 후 정신치료를 받지만 그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진다. 그는 가족 품안에서의 포근함을 그리워하는데, 부모님은 자신을 “신의 자식”으로만 대해준다. 십일월에는 새로운 인생길을 준비하기 위해 칸슈타트 김나지움 7학년(인문계 중고등학교로 한국의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함)에 입학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사(學事)에 구역질을 느낀다.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그는 술집으로 전전하며 고뇌로 가득 찬 나날을 살아간다. 몽롱하고 지속적인 투통과 지독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1893년 가을 김나지움에 자퇴서를 제출한다. 이로써 그의 학교 교육은 모두 중단된다. 그 후로는 서점판매원으로, 탑시계공장 견습공으로, 출판협회 조수로, 서점도제 및 서적분류조수 등으로 전전하지만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괴테를 중심으로 한 문학사와 낭만주의 작품들을 탐독하고 사색하면서 시인이 되기 위한 혼자만의 길을 외로이 걸어간다. 동시에 처음으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발표도 한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헤세의 상처받은 영혼은 '나는 하나의 별'이란 서정시에서 자신을 이렇게 서술한다. “나는 저 높은 하늘에 뜬 하나의 별이랍니다./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세상을 비웃기도 하고,/ 스스로의 불길 속에 타오르며 흩어지기도 하지요.”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우리 인간은, 그래, 우리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끝없는 방황과 고민을 하며 이리저리 비틀거린다. 때론 희망찬 꿈에 부풀어 웃기도 하고, 때로는 처절한 비탄에 젖어 울기도 한다. 오만하게 세상을 경멸하는가 하면, 무한한 비애와 굴욕감으로 처참해지기도 한다. 자신의 정열에 불타오르다가는 산산조각 부서져내리는 아픔을 맛보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망, 부모에 대한 존경과 반항, 친구에 대한 기대와 실망, 이름 없는 애인에 대한 연민과 고민, 신에 대한 믿음과 끝없는 회의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라고 성숙해지고 늙어가며 인간완성의 단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 헤세는 누구보다도 많이 방황하며 수많은 밤들을 뜬눈으로 지새운 시인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겪었던 온갖 슬픔과 갈등, 고뇌와 절망을 회상하며, 참된 나를 발견하기 위해 투쟁하는 인간들을 위해 충고해줄 수 있는 시인이 된다. 게다가 헤세는 서양의 신비적이며 기독교적 경건주의에서 출발하면서, 일생동안 인도와 중국사상의 동양적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고향”을 발견한다. 그러기에 그는 운명적으로 동양과 서양, 자연과 정신, 예술가와 사상가, 은둔자와 속세인, 모성과 부성(父性)의 수많은 대립 사이에 흔들거리는 일생을 살아간다.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자신의 인생에서는 물론 시적 창작활동에서도 모든 것을 양극(兩極) 사이에 긴장시킨다. 인간으로서의 헤세는 “결코 어떤 고정적이고 지속적인 형성체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시도이며 변화이다. 그는 바로 자연과 정신 사이에 놓인 좁고 위험한 다리이다. 가장 내면적 운명은 그를 정신으로, 신으로 몰아대고─가장 절실한 동경은 그를 자연으로, 어머니로 이끌어간다. 이 두 개의 힘 사이에서 그의 인생은 불안에 떨면서 흔들거린다.” 그러나 헤세는 신비스런 감정과 신앙성에서 일찍부터 인생의 날카로운 대립에 대한 극복 가능성을 예감한다. 훗날에 고대 중국의 정신세계를 접하고 이에 몰두하면서 양극성과 단일성에 대한 태곳적 관념을 인식하게 되고, 드디어는 동양의 지혜에서 그 자신의 예감에 대한 확증을 발견한다. 즉 양극적 대립성을 내포한 전 긍정적이며 조화적인 전일사상(全一思想), 모든 어둡고 밝은 면을 포함한 전체적 인생에 대한 활발한 긍정을 알게 된다. 이 양극적 단일성에 대한 이념을 헤세는 특히 ??데미안?? 이후의 모든 작품에서 여러 가지 동양적 요소와 소재, 인물 및 비유 언어 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서술한다. 그러므로 그의 문학 전체에서 볼 때, 모든 것이 긍정되고, 모든 것은 하나이며 똑같이 좋고 신성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커다란 전일성 속에서의 음과 양, 혹은 선과 악이란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이 아니라, 서로 보충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양극이기 때문이다. 바로 전일적이며 조화적인 단일사상이라는 동양적 문학정신 속에서 헤르만 헤세라는 인간과 그 인생의 운명적 균열도 조화를 이루며 지양되는 것이다. 헤세의 춘하추동 사계절에 대한 글들도 이런 문학정신 내지 근본이념의 관점에서 독서한다면 더욱 깊은 뜻을 음미할 수 있으리라. 자연은 하나이지만, 계절에 따라 다른 매력을 지니며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헤세 역시 봄·여름·가을·겨울을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서술한다. 겨울에 대해서는 눈 덮인 고요한 시골풍경이나 눈 위로 찬란하게 비추이는 2월의 태양 등 수정처럼 투명한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울리케 안데르스가 선별하고 두행숙의 유려한 번역으로 여기 펴낸 <겨울> 편에는 다수의 시와 수필, 관찰문과 편지, 여러 소설의 겨울서술 부분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것은, 겨울은 수장(收藏)과 사멸(死滅)의 계절로 죽음이라는 단계를 상징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주만물의 영원한 변화 속에서 죽음이란 하나의 단계를 넘어가는 것이지 영원한 종말이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크눌프가 눈 이불을 덮고 편안히 잠들어가듯이 우리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언제라도 환영해야 한다는 충고이다. 헤세 말대로 “모든 죽음의 보상은 새로운 탄생”이며, “어두운 문/ 저 너머에 생명의 합창이 밝게 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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