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하버마스는 현재 그의 모국인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사회 철학자다. 그는 또한 근 한 세기에 걸쳐 비판 이론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로 활동하게 된 것은 1964년 호르크하이머의 후임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로 취임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그의 연구는 68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나 당시 학생 운동의 비민주성을 ‘좌파 파시즘’으로 비판하면서 공격의 표적이 되었고 결국 1971년 막스 플랑크 연구소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를 대표하는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체계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전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결국 1981년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출간하고 1983년에는 다시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복귀한다. 복귀 이후에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주역이 되기도 하였으며, 1992년에는 그의 실천적 대안을 집대성한 『사실성과 타당성』을 출간한다. 1994년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현안, 종교 문제 등에 관한 활발한 사회적 발언과 연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사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늘날까지 긴 시간 동안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전개되어 왔다. 그의 사상은 한편으로 이 긴 시기 동안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성과들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그의 입장은 포퍼, 가다머, 루만,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 등 수많은 이론적 거장들과의 논쟁들을 통해 형성되고 표명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마스 사상의 핵심을 찾는다면, 그것은 이성적 대화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합리적 대화를 통한 해방과 화해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왔고, 이러한 근본 직관에 의거하여 자신의 사회 이론은 물론 민주주의 이론 또한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철학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는 주체와 주체 사이의 의사소통에 주목하여 근대 의식 철학이 전제해 온 고립된 주체와 그로부터 귀결되는 이성의 도구화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오늘날 횡행하는 과학주의와 탈이성주의의 도전에 맞서 인간의 포괄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고수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입장은 실천적 차원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진단, 즉 생활 세계 식민화 테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토의 민주주의론으로 구체화되었다
하버마스 사상에 대한 이해를 위해 먼저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과 『하버마스와 현대 사회』를 동시에 읽어 나갈 것을 권한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은 철학사적 맥락에서 하버마스의 위치와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하버마스와 현대 사회』는 사회 철학자로서 하버마스의 실천적 고민과 대안이 무엇인지를 개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급진적 반성의 필요를 주장하며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주체의 죽음과 이성의 해체를 선언하면서 전 지구적인 사상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하버마스는 이러한 사상적 흐름이 근대성에 대한 성찰의 역사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상세하게 분석한다. 그는 니체를 탈근대의 전환점으로 규정하면서, 하이데거와 데리다로 대변되는 형이상학 비판의 흐름과 바타유와 푸코로 대변되는 권력 비판의 흐름에 주목한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사상적 분투들이 근대적 이성의 한계에 대한 비판의 계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외부를 모색하는 이러한 비판의 전략들은 결국 자신들이 제시하는 비판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성의 타자, 이성의 외부를 지향하는 급진적 이성 비판의 전략들은 비판의 근본 토대인 이성의 대지와 결별하면서 결국 스스로의 의도를 부정하는 ‘수행적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평가에 기초하여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이성’이라는 새로운 탈출구를 제시한다. 주체와 주체 사이의 상호 인정과 합리적 의사소통이라는 새로운 대륙을 통해, 이성의 외부로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근대의 주체 중심적 이성이 봉착한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비판적 독해 방식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의사소통 이성의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현대 철학의 논의 지형에서 하버마스가 서 있는 자리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버마스 사상의 진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철학적 논의 지형을 넘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실천적 문제의식과 대안을 동시에 검토해 보아야 한다. 사회 철학자로서 하버마스의 핵심 고민은 현대 사회의 부정의와 병리 현상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하버마스의 저서들이 손쉬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하버마스와 현대 사회』는 그의 실천적 고민이 무엇이었고, 또 그가 제시한 대안은 무엇이었는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지구화가 수반하는 분배 불평등 문제를 고려하면서 하버마스의 현대 사회 분석과 그가 제시한 대안에 대해 비판적 질문을 제기하는 만큼, 오늘날 하버마스의 사회 철학적 논의가 가지는 의미와 한계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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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의사소통 행위 이론』과 『사실성과 타당성』에 도전할 것을 권한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의사소통 행위 이론』의 핵심은 행위 유형론과 생활 세계 식민화 테제다. 먼저 도구적 행위, 전략적 행위, 의사소통 행위에 대한 구별은 하버마스의 철학적, 실천적 대안이 성립하기 위한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으로 대표되는 근대 이성의 전면적 도구화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발판을 제공한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도구적?전략적 행위와 구별되는 의사소통 행위의 성립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나와 너의 차이와 동등성을 동시에 전제하는 의사소통 행위의 가능성을 확보하고, 그 속에서 작동하는 포괄적 이성을 제시할 수 있을 때에만 인간의 인식과 행위의 전면적 도구화라는 1세대들의 비관적 진단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의사소통 행위에 대한 그의 분석이 일상적 의사소통에 대한 화용론적 분석에 입각해 있는 만큼, 이는 이미 의식에서 언어로의 전회라는 철학사적 사건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 유형의 구별은 사회 이론 차원에서 체계와 생활 세계의 구별로 이어진다. 모든 사회는 두 차원에서, 즉 사회 통합과 체계 통합이라는 차원에서 스스로의 통합성을 유지하며, 따라서 사회 진화 과정 역시 구별되는 두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 진화는 체계의 명령이 생활 세계에 침투하는 ‘생활 세계 식민화’를 야기한다는 데 있다. 화폐와 권력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효율성만을 지향하는 체계의 명령이 의사소통적 상호 이해를 요구하는 생활 세계에 침투하면서 여러 가지 병리적 현상들이 나타나며,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 갈등의 핵심 축이 된다. 이러한 진단에 기초하여 하버마스는 새로운 사회 운동의 활성화를 생활 세계 식민화에 대한 저항의 표출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성과 타당성』은 이러한 생활 세계 식민화에 대한 실천적 대응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실성과 타당성은 법이 가지는 이중적 성격, 즉 현실적 구속력과 규범적 정당성을 상징한다. 법은 이러한 이중성으로 인해 체계와 생활 세계를 매개하는 고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의사소통적 권력에 입각한 입법 활동을 통해서 체계를 제어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생활 세계 식민화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을 제시하기 위해 그는 법의 이중성, 인권과 주권의 관계, 법과 도덕 및 정치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거쳐 대안으로서 토의 민주주의론을 제시하고 있다. 토의 민주주의는 시민 사회 공론장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토의들을 기초로 하는 입법부의 심의와 그 결과인 입법 행위를 통해 국민 주권의 이념을 실현하고, 이를 통해 체계 논리에 의한 생활 세계의 침식을 제어하고자 하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구상은 인권과 주권,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사이의 대립을 자신의 의사소통 패러다임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규범적 기초를 성찰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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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책들을 읽고 이해했다면, 현대 철학 논의의 장에서 하버마스가 서 있는 위치는 어디인지, 사회 철학자로서 그가 제시하는 시대 진단과 대안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성과 타당성』 이후의 저술들은 이러한 그의 기존 입장들을 철학적으로 공고화하거나 다양한 실천적인 과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작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의 저서들 혹은 의사소통 행위 이론이 성립하기 이전의 저서들과 관련해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독서가 가능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철학적 입장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 그리고 실천적인 현안들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몇 권의 책을 권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하버마스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탈형이상학적 사유』, 그리고 『진리와 정당화』를 권한다. 『탈형이상학적 사유』는 하버마스가 지향하는 탈형이상학적 사유의 지평이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떤 동기들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과학과 윤리 그리고 예술이 분화된 현대에 의사소통 이성의 통일성은 어떻게 가능한지, 의사소통 패러다임에서 근대적 주체 개념은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등 현대 철학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보다 이후의 저작인 『진리와 정당화』는 하버마스 자신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고 표현하는 이론 철학의 문제들에 대한 성찰들을 담고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먼저 인간 삶의 자연사적 우연성과 우리에게 불가피한 것으로 다가오는 규범성을 매개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실재의 객관성과 언어적 인식의 한계를 매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버트 브랜덤, 리처드 로티, 힐러리 퍼트남 등의 입장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러한 근본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하버마스의 철학적 입장을 보다 넓은 논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실천적인 과제들에 대한 하버마스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 『분열된 서구』의 일독을 권한다. 먼저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는 장차 유전자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과 그것이 가진 규범적 부당성을 문제 삼는다. 여기서는 한편으로 의사소통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하버마스가 인간의 권리를 어떻게 정당화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기존의 추상적인 보편 윤리를 넘어서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근원적인 윤리적 자기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분열된 서구』는 9.11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를 통해 초래된 서방 세계의 분열, 위험에 처한 국제법의 입헌화 기획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의사소통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구상될 수 있는 국민 국가 이후의 세계 질서와 세계 평화의 문제에 대해서 보다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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