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1844년 목사 가문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1870년 바젤 대학 고전 문헌학 정교수가 된 후, 쇼펜하우어 철학과 낭만적 염세주의의 색채가 가득한 『비극의 탄생』을 통해 철학으로 방향 전환을 한다. 이후 니체는 철학자로서 대담한 행보를 이어 간다. 철학적 시대 진단가이자 문화 비판가의 모습을 부각시킨 『반시대적 고찰』, 철학적 계몽가의 시각을 적용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 『아침놀』, 실험 철학의 분위기와 방법론을 보여 준 『즐거운 학문』을 1883년까지 연이어 출간한다. 그사이 니체는 건강상의 이유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휴양 여행을 시작했으며 남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의 휴양지를 오고 가는 고독한 길에서 비로소 그의 성숙한 후기 철학이 잉태되기 시작한다. ‘긍정의 철학’으로 대표되는 니체의 후기 철학은 이를 문학적 예언의 형태로 제시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형이상학과 현대성의 문제를 조합해 낸 이론서인 『선악의 저편』, 도덕 철학서인 『도덕의 계보』를 통해 표출되기 시작한다. 니체 최후의 철학적 결실은 1888년에 집필된, 바그너 비판과 현대성 비판을 연계시킨 『바그너의 경우』와 『니체 대 바그너』, 데카당스 현대성과 그리스도교 비판을 매개한 『우상의 황혼』과 『안티크리스트』, 탁월한 철학적 자서전인 『이 사람을 보라』, 철학적 산문시 『디오니소스 송가』에 집약되어 있다. 1888년 말부터 정체성의 혼란 등 정신적 문제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고, 1889년 1월의 토리노에서의 졸도 사건을 계기로 니체는 10년간 강도를 더해 가는 정신 착란의 상태로 지낸다.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사망한다.
니체는 키르케고르와 더불어 독일 실존 철학의 선구자로, 베르그손이나 짐멜 등과 더불어 생철학의 대표자로 분류된다. 개인의 구체적 삶과 실존 방식에 대한 탐구를 철학적 문제 제기와 해명의 단초로 삼기 때문이며(실존 철학), 인간과 자연 그리고 전 우주에 흐르는 생명 에너지를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로 포착해 내기 때문이다(생철학). 하지만 니체 철학은 그런 범주적 분류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얼굴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 철학의 시작점으로서의 니체’라는 철학사적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그가 제시했던 탈형이상학적 전회, 본질주의와의 결별, 중심주의 모델 및 절대주의 모델의 파기, 다원주의 모델을 통한 일원론 극복 프로그램 그리고 실체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의 전환 등은 철학의 제 영역에서 발생한 현대적 지각 변동의 단초이자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내용은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영향력은 문학, 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법학, 음악, 회화, 무용, 심지어 건축 영역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니체 철학은 현대성과 현대 정신의 기초를 세웠다고 할 수 있으며, ‘토대학으로서의 철학(fundamental Philosophy)’의 예를 보여 준다.
니체 철학으로 여행을 떠나려면 『이 사람을 보라』를 출발지로 삼기를 권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 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철학적 자서전으로 기획되어 니체 자신의 삶의 여정과 철학 형성과의 관계, 철학적 과제 설정과 그 이유, 저작들에 대한 자평까지 제공되어 있다. 거기서 니체의 철학은 그의 개인적 특성과 삶의 특징을 통해 설명된다. “나는 내 작품을 내 온 몸과 삶으로 쓰며, 순수하게 정신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라는 단언처럼, 니체는 철학자 개인의 삶과 철학 내용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을 『이 사람을 보라』에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지」,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지」 등의 소제목은 결코 이상한 제목일 수 없다. 여기서의 ‘나(니체)’는 ‘나의(니체의) 철학’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니체는 왜 이런 전무후무한 형태의 철학적 자서전을 기획한 것일까? 그것은 니체가 오랫동안 세간의 외면과 오해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직접 그려주고 싶어 한다. ‘철학적 다이너마이트이자 진리의 첫 발견자이며 전대미문의 정신 전쟁을 촉발시키지만 긍정의 철학자’라는 자화상을, 그리고 철학적 계몽가이자 교육자이자 철학적 치료사이며 동시에 예술가?철학자라는 자화상을. 『이 사람을 보라』를 읽었다면, 그의 철학에 대한 개괄적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다음 순서다. 주지하다시피 니체 철학에는 가시적인 체계가 없다. 이론도 없다. 친절한 설명도 없으며 심지어는 많은 것을 숨겨 버리기도 한다. 게다가 그것은 다면체 철학이기도 하고 퇴적층 같은 면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니체 철학에 대해서는 수많은, 때로는 화해 불가한 이해 방식들이 있어 왔고, 지금도 공존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니체 철학으로의 여행을 위해서는 안내서가 필요하며, 그것은 최소한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한 것이 좋다. 첫째, 가급적이면 니체가 스스로 제시했던 철학적 과제 설정과 의도 및 방법적 절차에 충실하게 그의 민얼굴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둘째, 니체 철학이 서양 철학의 자명성과의 맞대결에서 형성되었고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기에, 그 맞대결의 현장과 영향 관계를 분석하는 것. 셋째, 니체 철학은 서양의 인문 고전 일체뿐만 아니라 니체 당대의 자연 과학이나 사회 과학을 포함하는 풍부한 독서를 통해 형성되기에, 그 토대를 추적하여 해명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들이 제시되어야 비로소 니체 사유의 형성 과정과 그 귀결점에 대한 정당한 이해도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니체, 건강한 삶을 위한 긍정의 철학을 기획하다』는 도움이 된다.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은 니체 철학의 방법론, 존재론, 인식론, 도덕론, 예술론을 ‘긍정의 철학 건축’이라는 니체의 철학적 과제의 영역으로 체계화시켜 제시한 책이다. 사회 정치론이나 법론 등 실천 철학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니체 자신의 철학적 과제 설정과 그 수행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니체, 건강한 삶을 위한 긍정의 철학을 기획하다』는 계몽가이자 교육자이며 철학적 치료사라는 니체의 자화상을 니체 철학의 주요 주제들을 통해 부각시킨 책이다. ‘긍정의 철학’의 내용을 철학적 계몽 및 치유의 기획으로 재조명했고, 여기에 사회 정치론과 법론의 핵심 내용들도 추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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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철학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면 도덕과 종교와 예술이라는 니체 철학의 독보적인 주제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다. 『도덕의 계보』와 『안티크리스트』, 그리고 『비극의 탄생』과 『바그너의 경우』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이라는 유명한 도덕 유형론을 제공하는 『도덕의 계보』는 도덕 개념 및 도덕 가치의 발생사를 계보적 방법론을 통해 분석해 내려는 시도다. 즉 어떤 조건하에 인간이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 판단을 갖게 되었는가를 탐구 과제로 설정하여 현대 유럽의 지배적인 도덕을 파악하고, 도덕 코드 전체를 삶의 기호이자 징후로 이해하며, 도덕 판단 및 도덕 개념의 발생을 해명하면서 도덕과 관련된 것 일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위해 니체는 계보학을 처음으로 철학적 방법론으로 도입하지만, 바로 이 방법론 때문에 『도덕의 계보』 전체는 가설적 성격을 띠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역사로서의 계보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으로서의 계보학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논쟁서’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도덕과 관련한 모든 것과 논쟁하고, 그 논쟁 과정을 보면서 도덕적 진리가 무엇인지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유도한다. 종교적 주제에 대한 니체의 철학은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나타나며, 이 선언이 갖고 있는 진의를 『안티크리스트』보다 더 잘 해명해 주는 책은 없다. 니체는 『안티크리스트』에서 그의 큰 문젯거리였던 유럽의 데카당스를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격에 용해시키면서, 진정한 그리스도교성과 종교성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려 한다. 하지만 거기서 행해진 그리스도교 비판은 종교나 도덕으로서의 그리스도교를 넘어, ‘현대 가치 체계 전체의 토대’라는 시각을 가지고 진행된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니체의 평가가 아주 긍정적이며, 그가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상을 통해 보여 주려 한다는 것이다. 제도화된 그리스도교는 데카당의 종교이자 허무적 종교지만, 예수 그리스도만큼은 “사랑하며 사는 삶이 참된 삶이자 영원한 삶이며, 그런 삶의 실천이 바로 구원이자 천국”이라는 ‘진정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이해된다. 그래서 니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그리스도교인으로, 그의 삶을 모범으로 삼는 것을 진정한 종교적 실천으로 제시하게 된다. ‘예술가?철학자’라는 자화상을 가진 니체의 예술론은 초기와 후기의 저작들을 함께 읽어야 그 전모가 밝혀진다. 『비극의 탄생』이 니체의 초기 예술론을 대표한다면, 니체의 후기 예술론인 예술 생리학은 『바그너의 경우』(그리고 『니체 대 바그너』)를 통해 제시된다. 그리스 비극의 기원을 소재로 하는 니체의 처녀작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하에 쓰인 것으로, 한편으로는 당대의 고전 문헌학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18~19세기 유럽 문화를 그리스 비극의 정신을 통해 정화시키고자 하는 철학적 기획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비극론, 예술론, 문화 비평론, 예술가?형이상학이 서로 교차하며, 이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아폴론적 예술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예술 충동을 상정해서 예술을 설명하는 예술론에서 정점에 이른다. 하지만 니체는 이 처녀작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워하며, 그 한계를 예술 생리학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바그너의 경우』와 『니체 대 바그너』는 바로 그 전무후무한 형태의 예술론을 전제하는 작품이다. 여기서 니체는 데카당스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을 구분하고, 바그너의 악극(Musikdrama)을 데카당스 예술의 대표로 지목한다. 니체가 보여 주는 바그너 비판은 음악 이론적 측면의 비판이라기 보다는 철학적 비판이며, 바그너에게 결코 공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술의 본질과 예술의 목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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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사유의 결정판은 『우상의 황혼』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들어 있다. 스스로 “요약된 내 철학”이라고 부르는 『우상의 황혼』에서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자신의 철학적 기획을 완결시키려 한다. 그것은 서양 철학과 서양 정신 및 서양 문화 전반에 깃들어 있는 우상들을 캐내고, 그것들을 망치로 부숴 버리는 철학적 작업을 통해 수행된다. 그것도 특정 시대에 존속하고 사라져 버렸던 우상들이 아니라,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해 온 영원한 우상들이 그 대상이다. 더하여 18~19세기 현대라는 시점에 새롭게 등장한 우상들도 진단과 파괴의 대상이 된다. 이 우상 파괴 작업은 형이상학 비판론, 도덕론, 언어 철학, 예술론 및 문화론의 형태로 제시된다. ‘어떻게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지’라는 이 책의 부제가 알려 주듯이, 니체의 철학적 망치질이 행해지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어느새 ‘거리를 두는 파토스(pathos der Distanz)’와 정신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명실공히 니체의 주저라 할 만한 책이다. 철학의 모든 주제를 ‘가치와 전도’와 ‘긍정의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이 책을, 니체는 인류에게 자신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자 ‘다섯번째 복음’이라고 생각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문체와 구성 면에서 철학서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문학적인 작품이다. 거기서는 이론가의 목소리 대신 예언가와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며, 개념적 사유 대신에 상징과 비유와 패러디가 넘쳐 난다. 철학자 니체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가면을 벗기는 일은 매우 어렵다. 니체 철학에 대한 제반 지식을 전제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냥 산문시일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니체 철학의 이론을 먼저 숙지한 상태에서, 니체의 책 중에서도 제일 나중에 읽어야 하며, 그래야 니체가 ‘최고의 선물’이자 ‘다섯번째 복음’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이유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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