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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일곱 살의 도리고 에번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일본군 포로로 노역하다 살아남은 유명한 전쟁영웅이자 잘 나가는 외과의사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는 등 겉보기엔 화려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에겐 절대 지워지지 않는 두 개의 기억이 있다. 참전 전 젊은 숙모와 사랑에 빠졌던 것과, 일본군 전쟁포로로 지내던 시절의 잔혹하고 비참한 기억이 그것. 당시 하이쿠를 주고받으며 일본을 찬양하던 일본군 장교들은 전후 은행의 중역이 되거나 봉사활동을 하며 선을 실천하고 있지만, 도리고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겉으로는 정상의 삶으로 돌아왔을지라도 깊은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 리처드 플래너건의 작품으로, 2014년 맨부커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장이 "올해 수상작은 그야말로 걸작"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실제로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전쟁 포로 체험을 듣고 자란 작가는, 12년간 관련 기록들을 들추고 생존자들을 취재하며 집필에 매달려 마침내 ‘339번 포로에게’라는 헌사가 담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은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의 <오쿠로 가는 좁은 길>의 영어판 제목과 같다. 작가는 “바쇼의 책이 일본 문화의 최고 정점에 있다면, 내 아버지와 전쟁포로들은 그 문화의 최저에 있던 셈”이라고 언급했다. 역사의 무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한 인간의 영혼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인간'이란 무엇인지, '가족', '국가', '사랑'이라는 가치들은 과연 무엇인지 집요하게 되묻는다.